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삶의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쓸쓸해도 견딜 만하다... 쓸쓸해도...견딜 만하다...견딜 만하다...
(머니파워=황진교) 무얼 하며 사느라 김훈 작가님의 새 산문집 소식을 며칠 전에야 알고 부랴부랴 주문했다. 나는 작가님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하얼빈' 등 장편소설보다 '언니의 폐경' '화장' '저만치 혼자서' 등의 단편소설과 '자전거여행' '풍경과 상처' '밥벌이의 지겨움' 등 산문집을 좋아한다. 작가님은 체험한 것과 실체가 있는 것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 인생이나 자연 세월 사랑 시간 냄새 향기 젊음 늙음 삶 죽음 등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그러면서도 문장이 짧고 간결하고 얄짤없다(일개 독자인 내가 감히 대작가님의 문장을 이렇게 평가함을 용서해 주시길). 얼마나 오래 집요하게 생각하고 들여다보아야만 저런 묘사가 나올까 일개 독자인 나는 그저 읽을 때마다 감탄스럽다. 더구나 이번에 나온 산문집의 제목이 '허송세월'이다. 내가 지금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어서일까...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주문했다.
들어가기에 앞서 '늙기의 즐거움'이 있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이 낯선 시간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평안이나 불안 같은 심정적 세계를 일체 떠난 적막이라면 더욱 좋을 터이다... 이승에서의 신산한 삶을 위로할 만한 지복이나 구원이나 주막이 거기에 없어도 나는 괜찮다... 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삶의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 쓸쓸해도 견딜 만하다. 이것은 속수무책이다... 여름에 장대비가 쏟아지거나,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나는 집 안에서 책을 읽다가도 장비를 챙겨서 산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나는 언어와 개념으로부터 풀여나서 자유로웠고 몸으로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자족했다. 나는 이 자유의 느낌에 의지해서 속세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겨우 두 장도 읽지 않았는데 읽다 말고 서성거렸다. 나는 늙어가고 있음이 더욱 확실해졌다. 늙기가 즐거운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삶의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쓸쓸해도 견딜 만하다... 쓸쓸해도...견딜 만하다...견딜 만하다...>
그래... 견딜 만하지...
그리고 산...
나도 산을 좋아하고 산을 즐겨 찾았는데 산에 가지 않은 지 캘린더를 확인해 보니 5개월 째다. 지난 8월 안산에서 안양으로 이사를 오면서 나는 집에서 가까운 안양천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안양천에 나가 거닐었다. 안산에 살 때 거닐었던 채 20분도 걸리지 않던 신길천과 비교가 되어서일까... 특히 교교히 흐르는 물 위에 우뚝 선 오래되고 거대한 교각은 믿음직하고 안정되고 웅장해 보여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처음 한 달은 걸었다. 걸어서 한강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꿈으로 아껴두었다. 저녁 바람결에 가을이 느껴질 무렵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평균 4일을 달렸다. 1 km 달리다가 3km 5km 7km까지 달렸다. 10km를 목표로 열심히 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도 읽었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살도 빠졌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효과는 탁월했다. 인생스포츠를 찾은 것 같았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의 염려대로 두 달 만에 왼쪽 종아리와 아킬레스에 통증이 왔다. 열심히 찜질을 하고 파스를 붙였다. 뛰는 자세에 문제가 있는 듯하여 유튜브를 보면서 자세를 교정했다. 며칠 쉬다가 다시 달려 보는 걸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통증은 쉽게 낫지 않았다. 보폭을 좁히고 느릿느릿 달려 보았다. 그래도 3km를 겨우 달릴 수 있었다. 또 이렇게 포기하는 거야? 네가 그렇지... 그렇게 뒤늦게 만난 달리기와 티격태격하느라 산을 잊어버렸다.
<새 1 - 새가 왔다
내 방 창문 앞 모과나무 가지에 새가 둥지를 짓고 있다... 둥지의 아랫부분을 버티는 나무토막은 굵었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었는데... 새 두 마리는 쉴 새 없이 드나들며 나무토막을 물어 와서 둥지를 엮었다... 암놈이 들어앉았고, 수놈이 먹이를 물고 와서 암놈을 먹였다. 알은 보이지 않았지만, 암놈이 알을 품은 것은 확실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새는 가끔씩 몸을 뒤척이면서 자세를 바꾸었는데,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꼼작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어미새의 머리는 경건하다. 새는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어둠과 단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의 안쪽으로 침잠한다.... 새가 알을 품은 지 보름이 되어 온다. 이제, 알 속에서는 희미한 생명이 형태를 갖추고 있을 터이다. 이 생명은 멀리서 가물거리는 호롱불과 같은데, 그 숨결은 어미 새만이 알고 있다. 새는 서두르지 않는다...>
<새 2 - 새가 갔다
생명의 순리대로라면 6월 초에 새끼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6월 중순이 되어도 새끼는 깨어나지 않았다. 새들은 자주 둥지를 비웠고 날이 어두워지면 돌아왔다.
6월 하순에 새들은 며칠 째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다리를 놓고 나무에 올라가서 새 둥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알 두 개가 곯아 있었다. 핏줄이나 작은 머리통 같은 신체의 흔적이 생기다가 말았고, 거기에 파리들이 꼬여 있었다. 부패는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죽어버린 알을 품고서 부화를 기다리던 마지막 날들의 새의 슬픔에 관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고, 어둠 속에서 들리던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을 기억할 수 있다...
7월 초순의 어느 날, 오후 6시쯤에 떠나간 새가 다시 모과나무 둥지로 돌아왔다. 열흘만이었다.... 암컷은 오지 않고 수컷 혼자 왔다. 새는 건너편 집 처마 위에서 명상하듯 고요히 앉아 있다가 나의 마당으로 날아왔다. 저무는 날의 헐거운 광선이 모과나무 이파리들 사이에 부드럽게 퍼져 있었다. 새는 둥지 가장자리에 앉아서 둥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죽은 새알 두 개는 며칠 전에 내가 꺼내 버렸으므로 둥지는 비어 있었다. 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는 두리번거리며 마당의 이쪽저쪽을 살피더니,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울었다. 새의 울음소리는 토해 내는 듯했고 높은 음역에서 떨렸다...>
전날 나는 첫눈으로 폭설이 내린 지 이삼 일이 지난 안양천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앙상한 나뭇가지 위의 새둥지를 오래 올려다보았었다. 새 둥지의 둥근 테두리에 흰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새들은 마른풀과 잔설이 얼기설기 뒤섞인 물가 숲이나 폭설이 내린 후 더욱 맑아진 물 위를 날아다녔다. 지난여름 어쩌면 새 생명을 낳고 품고 기르느라 분주하고 소란스러웠을 높은 나무 위 새둥지는 이제 하늘 아래 바람만 스쳐 지나갈 뿐 그저 적막했다. 내가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한껏 뒤로 꺾어 그 새둥지를 왜 그렇게 오래 올려다보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책을 읽다가 나는 쿠팡에 망원경을 주문했고 다음날 새벽에 망원경은 내 집 앞에 배달되었다. 300 배율 배율조절 고배율 뮤지컬 캠핑 오페라 콘서트 아웃도어 휴대용 단망경 망원경이었다. 나는 그 망원경과 함께 '허송세월' 책을 챙겨서 오전 9시 무렵 가까운 수리산 관모봉을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작가님의 <새가 왔다, 새가 갔다>를 읽으며 갑자기 나도 망원경을 갖고 싶어 졌던 것이다. 글에는 망원경으로 관찰했다는 말은 없지만 아마도 망원경으로 관찰한 듯싶었다. 망원경으로 먼 산 먼 하늘 먼 공간들을 가까이 보고 나무 꼭대기의 새둥지도 볼 생각이었다. 청설모나 다람쥐는 벌써 겨울잠에 들었겠지... 혹여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겨울새라도 있으면 망원경이 제 값을 톡톡히 할 터인데... 하산 후 바로 집에 돌아오기 아쉬우면 조용한 커피숍에 들어가 '허송세월'을 읽으리라... 그렇게 야무진 다짐을 하고.
거의 5개월 만에 아웃도어를 챙겨 입고 등산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니 첫눈이 오면 만나자 약속한 첫사랑이라도 만나러 가는 듯 마음이 설레었다. 폭설로 미끄럽고 질척이던 도로는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고 구석구석 눈더미가 쌓여 있었다. 미쳐 갈 길을 가지 못한 낙엽들은 흉물스러운 모습을 짓뭉개져 있거나 눈더미 속에 함께 박혀 있었다.
20여분을 걸어 산 입구에 도착했는데 폭설에 부러져 넘어진 나무가 등산로를 막고 있었다. 올해 첫눈은 폭설인 데다가 습기를 머금은 습설이어서 피해가 심하다더니 정말 그 피해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발자국이 만든 우회로가 희미하게나마 있었다. 우회로는 젖은 낙엽이 쌓여 있거나 질척이는 흙길이어서 조금만 방심해도 미끄러질 것 같았다. 그렇게 부러진 나무로 막힌 등산로가 올라가는 계속 나타나서 중간에 내려갈까도 싶었다. 그래도 겨울산이 주는 맑고 차가운 공기는 내 발걸음을 자꾸 산으로 끌어올렸다. 한 시간 정도 올라 관모봉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관모봉에는 세찬 겨울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산 아래에는 없던 바람이었다. 어디에 숨어 있던 바람인가 반가움의 표시인가 싶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바람을 음미했다.
하산은 올라온 길이 너무 가팔라서 다른 길을 택했다. 하산길에서는 폭설에 휘어지고 꺾인 나무들을 더 많이 만났다. 수령이 오래된 듯 제법 굵은 나무들도 목이 꺾이듯 부러져 거친 태풍이 지나 간 듯 처참한 풍경이었다. 눈의 무게로 휘어진 나뭇가지는 더러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생나무가 툭툭 꺾인 모습을 언제 보았던가 싶었다.
눈 한송이 한송이는 무게도 소리도 없이 그저 바람에 어지러이 날리는 힘없고 연약한 존재인데 그 눈송이가 쌓이고 쌓여 나무를 부러뜨리고 건물을 무너뜨린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심 곳곳에도 눈송이같이 연약한 존재들이 모여들고 있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쌓여서 만든 폭설이 나무를 부러뜨렸듯이 그들은 아마도 무도한 권력을 무너뜨릴 것이다.
아... 이렇게 쓸데없는 상념에 사로잡혀서 나는 챙겨간 망원경을 깜빡 잊고 꺼내보지도 않았음을 집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괜히 망원경에게 미안하여 베란다에 서서 멀리 있는 오래된 주택의 옥상을 조준해 보았다. 여름에 초록잎으로 무성하던, 부부인 듯 보이는 두 노인이 자주 눈에 띄던 퍼걸러가 앙상한 철골을 드러낸 채 겨울햇살 속에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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