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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 5

머니앤파워 2024. 7. 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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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이니 하차하라는데 액셀을 밟아버렸다

 

(머니파워=황진교 ) 두 번째 기능시험에 도전하는 1215.

다행히 비는 그쳤고 잔뜩 흐렸지만 다시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운전석에 앉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듯한 긴장감이 여전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침착 침착 천천히 천천히를 주문처럼 입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기본조작 실수 없이 하고 무사히 출발했다. 경사로도 지나고 돌발도 무사히 잡고 직진 신호 교차로 통과하여 드디어 마의 직각주차 코스에 도착했다.

강사한테 배운 방법과 유튜브에서 배운 방법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외운 것을 그대로 오차 없이 실천하여야 했다.

... 우선... 연석선과 손잡이 맞추고 황색선과 간격 유지하며 진입하랬지... 됐어...또 연석선과 손잡이 맞추고 오른쪽으로 핸들 틀어서 또 모서리와 손잡이 일직선으로 맞추고 맞추고...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이론적으로는 다 외워서 머리로는 거의 완벽하게 그려지는데 조작하는 몸이 함께 잘 따라주지 않았다

어찌어찌 진입까지는 무사히 했고... 이제 후진해서 T자의 작대기 안으로 들어가는데 사이드미러로 뒷바퀴가 검지선에 닿으려 하는 게 보였다. 저걸 어쩌지? 앞으로 전진했다가 다시 후진을 시도해야 하나? 전진했다가 다시 후진해 들어갈 수 있을까? 자신없는데... 아니 아니 그냥 들어가 볼까 어떡하지? 어떡할까... 전진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후진해 들어올 수 있을까... 자신 없는데... 어찌할지 아직도 결론을 못 내리고 주저하는데 갑자기 ㅡ주차시간이 초과되었습니다ㅡ라는 멘트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아 젠장... 시간...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네... 시간을... 세월아 내월아 한없이 망설이고 주저해도 되는 줄 알았나? 바보같이... ... 진짜... 주차 시간 초과가 몇 점 감점이더라... 너무 침착했구나... 시간도 신경 써야 했는데... 빨리 나가자 일단...

마음이 급 초조 불안 다급해졌다. 어찌어찌 주차코너를 다 빠져나와 우회전하려는데

ㅡ시간초과 불합격입니다 차를 정지시키고 하차하시기 바랍니다ㅡ라는 멘트가 더욱 날카로운 채찍이 되어 나를 후려쳤다.

아 씨... 안돼... 허무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차하라고? 이렇게 빨리? 운전석에 앉은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이렇게 운전대를 놓아야 하는 거야? 억을해... 너무해... 이렇게 놓긴 너무 아쉬워... 아쉬워... 좀 더 나아가 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자갈돌처럼 시끄럽게 굴러다녔다.

그런데 무슨 배짱이었을까...

에라 모르겠다. 좀 더 가보자...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극도로 소심하고 의기소침했던 내가 아닌가...

나는 마지막 멘트를 무시하고 액셀을 밟았다. 차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사이드 미러에 멈추라고 손짓하며 뛰어오는 진행요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더욱 운전대를 꽉 잡고 엑셀을 좀 더 밟았다. 머릿속에 입력된 남은 시험 코스를 따라 달렸다. 한번 더 우회전하고 다시 좌회전하는 교차로코스 신호등 앞에까지 와서야 브레이크를 밟아 멈췄다.

"뭐 하는 겁니까 지금! 사고라도 내면 어쩌려고 그래요? " 뒤따라 뛰어온 진행요원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화를 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조수석에 실려 돌아왔다.

나는 명백한 나의 잘못에 대해서만큼은 죄송하다는 말에 결코 인색한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그때는 어쩐지 죄송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내 남은 기력을 그 잠깐의 질주에 다 써 버려서 사과의 말조차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와 한 시간 정도 추가 교육 신청을 하려 했더니 예약이 꽉 차서 없다 했다. 내 옆에서는 앳된 여자애가 합격의 기쁨으로 상기된 얼굴을 하고 도로주행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시 일주일 후 시험 일정을 잡고 학원을 나섰다.

가족에게 떨어졌음을 알렸다. 또 떨어졌다... 더 이상 못할 것 같다...했더니 계속하라고...많이 해 봐야 나중에 교통사고 안 낸다는 하나마나한 말로 격려를 해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맥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두 정거장을 지나쳐 왔다. 그 운전면허 시험장에 내 혼을 두고 온 듯 정신이 몽롱했다. 두 정거장을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왔다.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사고와 몸이 흐물흐물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상으로 돌아온 첫 감정은 통쾌함이었고 그에 따른 웃음이었다. 어떻게 하차하라는 안내 맨트를 무시하고 겁도 없이 액셀을 밟았을까...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디다 처박았으면 어쩔 뻔했어... 생각만 해도 몸이 오그라들며 아찔했다.

궁금해하는 친구 전화가 와서 무용담처럼 한참을 떠들었다. 같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역시 너답다고 친구가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튼튼한 체력 못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음을, 살아가는 데 무언가 결여된 듯한 구석이 있다는 걸 모른다.

어쨌든 두 번째 기능시험 불합격은 또 한번의 엄연한 실패.

실패의 맛은 역시나 썼다. 쓴 약이 몸에 좋으니 이렇게 쓴 실패도 훗날 약효가 있으려나...

#운전면허#불합격#머니파워#황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