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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 9

머니앤파워 2024. 8. 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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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격하게 했다 도로에서...

 

(머니파워=황진교) 이 글은 2021118일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2022112일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 까지의 웃음과 눈물의 때늦은 도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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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

하루 2.5시간씩 410시간 운전연수를 받고 나서야 장류진 작가의 단편소설 연수가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연수2020년 제11회 젊은 작가상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다. 처음 연수란 제목을 보고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연수란 이름은 영화배우도 있고 소설가도 있고 우리 회사직원도 있다. ‘연수운전연수인 것을 알고 어쩐지 실망스러워 대충 읽었던 거 같다. 그때는 운전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이렇게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할 줄은 몰랐으니까.

내가 운전연수를 직접 받고 다시 읽어보니 운전연수를 받기 전에 한번 더 읽어보았다면 다소 도움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를 들어 연수봉이라는 것이 나온다. 뗐다 붙였다 하는 휴대용 보조브레이크라고 한다. 나는 이틀은 연수차로 이틀은 자차로 하겠다고 했다. 이 작품을 기억해 냈다면 연수차로 이틀 연수 후 아 어떡하죠 보조브레이크도 없이 운전하다가... 하며 강사에게 불안하게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강사는 소설 속 강사처럼 본인 연수차의 연수봉을 떼어와 자차에 설치했다.

ㅡ사이드미러의 각도는 지평선이 아래위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게끔 조정. 절대 사이드미러에 시선을 오래 두지 말 것. 딱 일 초만 볼 것. 이 초까지는 허용. 힐끗, 봤을 때 뒤차의 차체가 지붕부터 바퀴까지 온전히 다 보인다면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다는 뜻. 그때 액셀을 세게 밟아 속도를 높이면서 핸들을 쓱 꺾어 들어가면 차선변경 끝.

소설에 나오는 차선변경에 대한 설명인데 나의 운전연수 강사의 설명 보다 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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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운전 연수 강사는 50대 여자다. 잘 나가는 회계사 커리어우먼 주인공 주연은 연수가 끝난 후 그녀가 유능한 강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어 다섯 시간 추가 연수를 신청한다. 하지만 강사가 거절한다.

주연 씨는 이제 곧잘 해. 더 받을 필요 없어.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어

아니에요 좀 더 하고 싶어요. 딱 다섯 시간만 더 하고 나면 그땐 진짜로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까지 연수만 할 거예요? 결국은 혼자 다녀야 하는데...”

이후 강사는 불안해하는 주연을 혼자 운전석에 두고 자기 차로 주연의 차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면서 스피커폰으로 조언을 해 주었다. 이른바 원격연수.

ㅡ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바로 뒤에서 날 주시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의지해 어느새 꽤 긴 길을 혼자 달려왔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우측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봤다. 차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금 차선을 바꾸지 않으면 한참을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 길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고 혼자 주행하기에는 당연히 무리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핸들이 금세 축축해졌다.

내가 뒤에서 막아줄 테니까 그때 오른쪽으로 차선 하나 옮겨요. 알겠지?”

그녀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옆 차선으로 파고들어 갔다. 신호 대기 중이던 차 여러 대가 동시에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차갑고 신경질적인 경적은 내가 아니라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스피커폰에서 그녀의 긴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이야 지금!”

....

고마워요 선생님

스피커폰에서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속 직진.... 그렇지....”

....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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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연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다시 읽어 본 이 마지막은 긴박하고도 가슴 뭉클하고 뜨겁게 다가왔다.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만난 일시적인 관계라 해도 이렇게 뭉클하고 뜨거운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소설이기에, 소설에서만 가능할까.

아무튼 나는 열 시간의 운전연수를 받았다. 이 연수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이틀이나 삼일 더 받는 게 좋을 듯하다는 것이 강사의 의견이면서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나는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해 놓았지만 다시 연수를 받더라도 이번 강사에게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강사의 연수 방법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열심히 가르쳐 주려고는 했다. 쉬지 않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주차에 대해 배울 때 그랬다. 시키는 대로 하면 주차가 됐다. 그러나 나는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이해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강사는 나를 이해시킬 맘이 없어 보였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만 반복적으로 자꾸자꾸 하라고 하는 듯이 받아들여졌다. 자꾸 나보고 머리가 너무 복잡하며 생각을 너무 한다고도 했다. 운전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오른쪽 다리로 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몇 번 내리쳤다. 모두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강사의 강의 방법보다 길치 방향치 기계치인 내 이해력에 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수를 받더라도 나는 다른 강사에게 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또 알아봐야 하고... 또 내 기대와 다르면...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혹자는 이렇게 다정하게 나무랄 수도 있겠다. 현실은 현실이야 소설이 아니야... 소설과 현실을 비교하는 건 아니지... 너무 이상적인 강사가 나오는 소설을 읽었군 그래...

하지만 확실히 밝혀두겠다. 이 글의 서두에도 밝혀 두었듯이 나는 하루 2.5시간씩 410시간 운전연수를 다 받고 나서야 장류진 작가의 단편소설 (연수)를 기억해 냈고 다시 읽었다!!!

잇몸이 붓고 입안이 헐었다. 피곤하고 긴장의 연속일 때면 나타나는 몸의 증상이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꼭 운전을 해야 하나... 하는 쓸데없고 힘만 빼는 회의가 몇 차례 왔다.

일단은 아들의 도움과 완전 운전 고수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운전 고수 친구는 다행히 나를 잘 아는 오래되고 성격 좋은 친구여서 행여 운전으로 잘못될 관계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친구는 몇 번 이웃의 운전연수를 해 준 경험도 있고 모두들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친다고 칭찬하고 고마워하면서 운전학원에 연수 강사로 취직할 만 한 능력이라고도 했단다.

친구는 처음부터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계속 망설였다. 왜냐하면 친구는 2년전 유방함 2.5기 선고를 받았고 이 후 길고 힘든 항암과 요양원 생활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겨우 3개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행여 털끝만큼이라도 몸에 무리를 주거나 정신에 스트레스를 줄 수는 없었다.

나의 이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연수 따위로 스트레스 받을만큼 나약하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남편이 있지 않느냐고 혹시 궁금해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기에 짧게 언급하겠다.

강사의 연수가 끝난 후의 어느 날 남편를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해서 나갔다가 정말로, 정말로 대판 싸우고 돌아왔다. 부부끼리 운전연습하다가 이혼위기까지 갔다는 말이 과장되거나 빈 말이 아님을 확인했다. 이혼 위기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이혼, 이라는 말이 오고가기는 했다.

자기 성격 이런 사람이었어? ... 몰랐네... 그동안 속고 산 거네... 그 성격 어떻게 참고 감추고 살았냐? 어떻게 그렇게 무섭고 냉정하게 윽박지를 수가 있어? 이제 막 걸음마 시작한 아기한테 달려보라고 하는 거잖아 지금!!!”

운전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몰라서 그래? 잘못했다가...”

무서운거 내가 몰라?”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한단 말야 배울 때... ”

아하... 이래서 부부끼리는 운전연수 해주는 거 아니라고 했구나... 맞네 맞아... 이혼도 하겠네 몇 번 더 하다가는...”

이혼 얘기가 왜 나와?”

나 못하겠어... 세울거야... 당신이 해... ”

어 어... 여기 세우면 안돼지... 속도 유지 해 속도 유지... 어 어... 지금 어디로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