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결같이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곳도 없다고, 우리는 바닷가에서만 온 종일 놀기도 했다고, 우리는 소위 핫플레이스라는 곳을 찾아다니지 않는다고, 그냥 함께 일상을 떠나는 것에만 의미를 둘 뿐이라고 일관되게 답했다. 가이드는 믿을 수 없어 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머니파워=황진교) 내 유년의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부산이 그리움의 도시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티브이의 영향이지 싶을 뿐이다. 티브이로 바다를 보게 되었고 그 바다에 매료되었고 그 도시가 부산이라고 하기에 막연히 부산을 가슴에 품었던 것 같다. 온통 산으로만 둘러싸인 좁고 답답한 곳에서 살다 보니 끝없이 넓고 푸른 망망대해의 바다가 펼쳐진 부산은 내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바다의 도시 부산을 알게 된 이후로 부산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 것은 유난히 고등어를 좋아하는 동생에게 고등어장사한테 시집보내겠다고 놀리던 아버지의 농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빈농의 가난한 우리가 그나마 가끔이라도 먹을 수 있는 생선은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밖에 없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방황과 좌절로 유난히 힘들었던 20대의 나에게 부산은 하나의 도피처였다. 친구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다녀오기도 했지만 가끔은 혼자서 떠났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해운대행 첫 버스를 탔다. 그 첫 버스엔 늘 잠이 부족한 듯한 승객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동이 터오는 해운대 바닷가 모래밭을 하염없이 거닐다가 근처 식당에 들어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오후 기차로 올라왔었다. 단 한번 겨울날 갑작스럽게 떠난 해운대에서 나 같은 방황하는 청춘의 남자애와 같이 잠깐 해변을 거닐고 국밥을 먹었었다. 그 남자애의 얼굴은 금방 잊어버렸는데 국밥과 함께 나온 깍두기가 유난히 빨갛고 시큼했던 기억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만남은 그것으로 끝났다.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대 후반 서울 하늘 아래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남자가 하필이면 또 부산 남자였다. 나를 만나기 몇 달 전에 부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12월 14일 토요일 수원역에서 출발하는 07시 26분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해 40년 지기인 우리 셋은 모였다. 경은 재색의 짧은 양털후드집업을, 희는 무릎길이의 브라운색 코트를 나는 검은색 롱패딩을 입었다. 코트를 입은 희에게 춥지 않겠느냐고 염려했더니 우리 지금 남쪽으로 가거든... 여기 보다 5도는 높거든... 했고 이에 질세라 아무리 그래도 겨울의 부산 바닷바람 무시하면 안 될걸... 했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 안에서 삶은 달걀과 커피를 마시며 조곤조곤 속삭였다. 경은 지난해 남편과 부산투어를 했으며 희는 지지난해쯤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부산에 갔었으며 나는 몇 년 전 동창모임에서 추진한 리마인드수학여행으로 다녀간 부산이었다.
부산역에는 알음알음으로 우리 일박이일의 부산투어 가이드를 자청한 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우리보다 다섯 살 연상인 그는 며칠 전부터 우리에게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말해 달라고 했다. 타지에서 온 사람과 부산에서 사는 사람은 가보고 싶은 곳이나 먹고 싶은 것이 다른 경우가 많더라고, 거기에 맞춰서 일정을 짜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결같이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곳도 없다고, 우리는 바닷가에서만 온 종일 놀기도 했다고, 우리는 소위 핫플레이스라는 곳을 찾아다니지 않는다고, 그냥 함께 떠나는 것에만 의미를 둘 뿐이라고 일관되게 답했다. 가이드는 믿을 수 없어 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몇 년 전의 목포 여행에서는 아무런 계획 없이 목포역에 내려서 어디를 어떻게 갈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즉흥적으로 역 앞에 서있는 시내 투어 버스를 탔는데 그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두고두고 추억했다. 단 한 곳 얘기한 곳이 경의 남편이 강력 추천한 '감천문화마을'이었다.
부산역 광장에 나서니 서울에 사는 부산 남자와 결혼해서 부산을 시댁으로 방문해야 했던 아주 오래 전의 날들이 바람 속에 잠시 실려왔다. 전업주부였던 나는 명절 전의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남편보다 먼저 시댁에 내려갔다. 서너 살 된 아들과 부산역에 내린 나는 남편도 없는 어색한 시댁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싶었다. 부산역에 날아든 갈매기와 놀고 있는 아들은 나의 작은 소망을 이루어 줄 이유로 아주 적절했다. 애가 갈매기 구경 하느라 일어서지를 않네요... 좀 더 놀겠다고 떼를 써요... 애 때문에... 좀 늦을 거 같아요... 그렇게 발칙한 핑계를 대고 부산역 광장의 시멘트 난간에 가출한 여자처럼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가이드는 먼저 '해동용궁사'로 방향을 잡았다. 셋 모두 한 두 번 쯤 가 본 곳이지만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산중이 아닌 해안가 바위 위에 있는 사찰로 우리나라 삼대 관음성지(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중 한 곳. 나는 몇 해 전 용궁사 입구에서 사 먹은 씨앗호떡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아마도 점심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이었겠지. 총무를 맡고 있는 희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앞에 두고 씨앗호떡을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거절했다(참고로 우리는 여행 때 총무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른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카푸치노 거품 같은 흰 파도와 빚어놓은 조각품 같은 바위와 어우러진 사찰을 돌아보는 좁은 통로는 외국인과 내국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떠밀리다시피 한 바퀴 돌고 몇몇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서둘러 빠져나왔다.
점심으로 무얼 드시고 싶으시냐는 가이드의 말에 아무거나요... 바다니까 생선이나 해물이면 되겠죠 뭐... 했다. 가이드는 자신이 가끔 가는 곳이라면서 기장군 기장읍의 '연화할매집' 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가는 길에 차창으로 본 부산 거리의 가로수는 아직 잎을 다 떨구지 않았다. 역시 남쪽이어서인지 늦가을의 정취가 얼마간 남아 있었다.
산낙지 새우 굴 전복 해삼 멍게 등 싱싱한 모둠해물에 이어서 큰 솥 채 나온 전복죽은 구수하고 푸짐해서 두 그릇씩을 먹고도 남았다.
해운대 근처의 숙소로 가는 길에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 이번에도 여전히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통령 탄핵 가결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놓고 저마다 얕고 가벼운 정치적 견해를 들떠서 떠들어 대는데 눈치 백 단인 희가 옆구리를 찔렀다. 탄핵 가결 뉴스에도 아무 말없이 오히려 더 조용히 운전만 하는 가이드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마도 가이드님은 우파이신 듯... 우리 정치 얘기 하지 말자... 하고 나직이 말했다.
희의 말을 듣고도 가이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 싸해진 분위기가 미안했는지 가이드는 돌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은 절대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우리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여 주며 놀이공원의 청룡열차처럼 공중에 둥글게 떠 있는 위압적인 대교로 시선을 돌렸다. 가히 나날이 발전하는 국제 해안도시로서의 위용이었다.
경의 딸이 예약해 준 '라비앙즈해운대에비뉴호텔' 21층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나란히 놓인 깨끗하고 정갈한 침대 너머로 창 가득 바다가 보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오션뷰. 고층건물에 얼마간 가려지기는 했지만 일렁이는 바다와 파도소리와 무엇보다 일몰과 일출빛이 그대로 가득 차기에 충분한 것 같아서였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해운대 바닷가로 나갔다. 바다를 둘러싼 육지는 국제적인 관광지답게 초현대식의 고층건물들과 관광객들로 철 지난 바닷가의 썰렁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젊은 시절 찾아온 해운대가 거칠지만 순수한 분위기였다면 지금의 해운대는 한껏 치장한 도회지의 세련되고 화려하고 성숙한 분위기 같았다. 해운대 뿐만 아니라 모든 곳이 그러했다. 이후로도 계속 최첨단 도시로 발전해 나갈 한 때 내 꿈의 도시 부산의 미래의 모습이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이기를...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다. 희끄무리한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바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즈넉하고 차분한 기운이 기분을 멜랑꼴리하게 만들었다. 파도소리조차도 차분하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처럼 들렸다. 파도가 쓸고 간 젖은 모래 위를 걷다가 쏴아아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에 까르륵 대며 달아나는 유치찬란한 행동을 하며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해변을 따라 걸었다. 가이드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지만 우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바닷물이 점점 더 파랗게 투명해졌다.
조선비치호텔을 지나 동백섬 둘레길로 올라갔다. 드문드문 동백꽃이 피어 있는 해안 데크길을 걷다 보니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나타났다.
2005년 11월 아시아 21개국 정상들이 모여 회담을 한 장소로 우리나라의 전통한복인 두루마기를 입은 각국 정상들 한가운데 그립고 안타까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인다운 당당함으로 서 계셨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많은 영상 중 군대에 방문하여 장병들 앞에서 한 연설이 눈물이 날 정도의 감동적이었다.
<나는 군대가 할 일이 없게 만들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로서 여러분들에게 전쟁에 출정하라고 명령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대한민국 국군이 없으면 그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역설입니다... >
얼마나 든든하고 인간적이고 따뜻한 대통령인가... 이런 대통령을... 어찌... 그렇게...
동백섬을 돌아 다시 해운대 바닷가로 돌아오니 일몰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파랗게 투명하던 바닷물에 검은색 잉크가 섞인 듯 검푸르렀고 파도는 빛나는 순백색이었다.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작은 무대에서 젊은이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비트가 빠른 모르는 노래지만 저절로 고개를 까딱이며 발로 박자를 맞추며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노래여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술 한잔을 곁들이는 저녁으로는 해운대 앞 먹자골목 안을 기웃기웃 서성이다가 입구에서 생선을 굽고 있는 '마산이모집'에 들어갔다. 생선모둠구이와 파전과 소주와 맥주가 한 상 차려졌다. 한참을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돌아보니 식당 앞에 늘어선 줄이 보였다. 어? 여기가 맛집이었나?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네... 어쩐지 생선구이도 파전도 밑반찬도 된장찌개도 맛있더라니... 파전은 두 판이나 먹었고 된장찌개도 추가해 먹었다.
우리끼리는 몇 번 티격태격한 얘기지만 가이드를 위해 부산에 얽힌 추억들을 끄집어냈다.
나 ㅡ20대 초 나의 친언니가 부산에서 결혼식을 하게 됐는데.. 네... 우리 형부도 부산사람이네요... 희가 같이 가고 싶다 해서 같이 부산에 왔거든요... 예식장이 부산역에서 멀지 않았어요... 식 끝나고 다시 올라가려고 부산역 왔는데 기차시간이 많이 남아서 역 앞 커피숍에 들어갔어요... 아마 겨울이었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부산까지 6시간 걸렸지요... 피곤했던지 깜빡 졸았어요... 깨보니 기차시간이 임박한 거예요.. 커피숍 나와서 막 뛰었죠... 근데 한참을 뛰어도 역이 나오지를 않는 거예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린 글쎄 역의 반대방향으로 그렇게 뛰었던 거예요...
가이드 ㅡ 우하하하...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기차 놓쳤나요?
나 ㅡ 그런데 그날 그렇게 죽자고 뛴 기억은 또렷한데 그 이후 기차를 탔는지 놓쳤는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아요...
희ㅡ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난 니 결혼식 때문에 부산 온 기억밖에 없어...
나ㅡ넌 내 결혼식에서 부케 받다가 내 드레스 밟고 미끄러져 넘어진 기억도 안 난다면서...
희 ㅡ 진짜 안 난다니까
경ㅡ나도 희가 니 결혼식에서 넘어진 건 기억 안 나는데...
나ㅡ그래 경 너는 안 날 수 있어. 근데 당사자가 안 난다는 건 좀... 너 넘어지는 모습 담긴 비디오도 오래전 남편이랑 이혼 하네마네 심각할 때 없애버려서 증거도 없고... 그때 너 넘어진 거 담긴 비디오 내가 방송국에 보낼까도 했었거든... 그 당시 시청자들이 보내주는 웃기는 비디오 방송해 주는 프로가 있었어...
희ㅡ 암튼 난 기억 안 나... 그랬다면 얼마나 창피했을까...그랬다면...으으으... 기억 안 날 리 없어...
나ㅡ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너 엄청 창피해했어... 너의 그 A형 성격에... 하객들과 남편 친구들 앞에서 말이야... 너 얼굴 빨개져서는 고개 폭 숙이고 손으로 얼굴 가리고 애들 뒤로 막 숨었다니까... 그걸 잊다니... 그래 뭐... 기억이란 것이 그런 거지... 과거를 정확히 다 기억하고 있기엔 우리의 뇌가 너무 작을 수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짧지 않다는 뜻일 수도... 그렇지... 그래... 그쟈??
가이드 ㅡ 너무 창피해서 잊어버렸을 수도 있죠...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은 지워준다잖아요... 우리의 똑똑한 뇌가...하하하... 암튼 세 분 참 보기 좋으네요... 참... 보기 좋아요...
적당한 취기로 여행의 맛이 극에 달한 우리는 식당을 나와 이제 밤이 내린 바닷가로 나갔다. 검은 밤바다를 향해 우아아아...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함성을 소심하게 몇 번 질러보다가 통닭과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늘 그랬듯이 잠결에 희가 방을 나가는 기척을 들었다. 희는 여행 때마다 가장 먼저 일어나 나가서 여행지에서 의 일출을 폰 가득 담아 왔다. 경과 나는 늦게 일어나 희가 담아 온 폰 속의 사진으로 일몰을 구경했다. 해운대 신선한 아침의 바닷물과 파도가 이렇게 이쁜 줄 몰랐다고, 특히나 가는 주황색의 다리를 가진 날씬한 갈매기도 이쁘더라고, 일출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막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는 희의 얼굴엔 오렌지빛 일출의 기운이 어른거리고 있는 듯했다.
11시에 체크아웃한 우리를 가이드는 해장에 재첩국만 한 것이 없지 않겠냐고 하면서 차를 몰았다. 부스스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우리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내린 곳은 '광안리 할매 재첩국'. 그런데 웨이팅 줄이 길었다. 가만히 줄 서 있기엔 추운 날씨였다. 우리가 싫어하는 행동인데 안 하던 짓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물론 가이드의 권유도 있었지만. 전라도 구례나 하동 쪽에서 먹어본 재첩국이랑 뭐가 다르고 얼마나 맛있는지 보자고 벼르기도 하면서 번갈아가면서 줄을 섰다.
식탁에 앉고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드디어 재첩국을 영접했다. 역시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뚝배기에 나온 재첩국이 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맨밥이 아니라 비빔밥이 나왔는데 비빔밥 소스가 고추장이 아니라 된장소스였다. 그리고 반찬으로 나온 데친 다시마의 소스는 초고추장이 아니라 무슨 액젓이었는데 그 맛이 독특하고도 맛있어서 초고추장보다 다시마와 더 잘 어울렸다. 무슨 액젓이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추가로 시켜서 와구와구 먹다가 잊어버렸다.
이제 경의 남편이 강력 추천한 감천 문화마을로 향했다.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아기자기한 파스텔톤의 집들과 미로 같은 골목길 그리고 가장 높은 하늘누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국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추운 날씨에도 화려한 한복을 입고 머리 장식까지 한 외국인들이 많았고 높은 난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조형물이 있는 포토존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패스...
1950년대의 피난민들은 살기 위해 해가 뜨면 이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을 것이고 해가 지고 밤이 오면 지친 몸을 이끌고 좁고 가파른 이 계단을 올라왔겠지... 그의 거친 손에는 그날 번 돈으로 마련한 줄에 매단 연탄 한 장이나 생선 한 마리가 들려 있었겠지... 힘들어 주저앉았다가도 저 멀리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내 집의 불빛을 보고 다시 온 힘을 다해 일어섰겠지...
마지막 장소로는 영도 라벨스 호텔 24층에 있는'라벨스스카이카페 앤 바' 역시 가이드가 추천한 곳이다. 바다를 품은 대도시 부산의 그림 같은 모습이 한눈에 가득히 들어왔다. 흘러가던 구름이 잠시 멈춘 듯한 하늘과 그 하늘과 맞닿아 하늘빛에 물든 먼 산맥과 빼곡히 들어찬 높고 낮은 건물들과 쭉 뻗은 대교와 아치형의 대교와 그 모든 것을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듯한 바다와 한 곳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들마저도 그림 같았다. 규칙적으로 흰 포말을 그리며 느릿느릿 지나가는 배가 그림이 아님을 말해줄 뿐...
5시 50분 ktx를 타기 위해 일어서야 할 때는 아쉬움으로 엉덩이가 유독 무거웠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이번 일박이일 부산투어를 이렇게 기억하며 한두 번쯤 티격태격 하지 않을까.,.
"우리 가이드와 부산 여행한 거 기억나?"
"우리가 언제 가이드랑 여행했다고 그래..."
"그게 부산이었어? 목포 같은데..."
아무려나... 무자비한 시간이 흐른 먼 훗날 우린 그렇게라도 함께 추억할 기억을 또 하나 추가했다. 그 의미만으로... 충분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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