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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곰탕을 끓이면서

머니앤파워 2025. 1. 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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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너무너무 재미있다거나 내가 한 요리를 맛있게 먹는 걸 보는 보람이 대단하다거나 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것 또한 무료하고 불안한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임을 아무도 모를 것이지만... 괜찮다.

닭곰탕 육수 내기
                                                 

(머니파워=황진교)  아무거나 먹지 먹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세상 귀찮고 의미 없는 것이 요리하는 일과 시간이라고 경멸까지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주방에서 요리하는 일 외에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말하자면 꿈도 희망도 기대도 욕망도 너무 많아서, 그런 것들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금방 이루어질 듯해서 먹는 거 따위는 뒷전이었다. 그저 배고프지 않으면 되었다. 배고픈 것을 느끼는 것조차도 짜증 났다. 배고픈 걸 해소할 수 있는 알약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 맘이었으니 어쩌다 맘먹고 하는 멸치볶음이나 콩자반은 딱딱해서 먹을 수가 없었으며 생선요리는 비린내가 진동을 했으며 미역국에는 진간장을 넣어 숯을 넣은 듯 시커맸으며...

 

어쩌다 세일을 많이 해서 큰맘 먹고 사온 배추나 열무나 쪽파는 주방에 들어서면서 후회가 시작되었다. 손질하려고 싱크대 가득 펼쳐놓고는 내가 왜 샀나 미쳤어 미쳤어하면서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 못한 나 자신을 두들겨 팼다. 그렇게 만든 반찬이 맛있을 리 없었다. 온갖 양념을, 그것도 자신이 없으니 푸지게 넣어 겨우 완성했지만 결국 몇 번을 먹지 못하고 버려야 했다. 풋내가 나든가 너무 짜든가 익어가면서 더 맛있어야 할 김치류가 쓴 맛이 난다든가...

 

그랬던 내가 요즘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이가 들고 퇴직을 하고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요리에 들이는 시간이 너무 많다고 나 스스로도 인정한다. 내 가까운 친구는 그럴 시간에 친구를 만나거나 문화생활을 한다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핑계 삼아 말한다. 우리 아들과 남편이 내가 한 음식을 너무 잘 먹어... 적어도 아들이 독립할 때까지만 열심히 해 먹일 거야... 시간도 많은데... 애 클 때 돈 번 답시고 대충 해 먹였거든... 얼마나 길겠니... 곧 끝나...남편과 아들조차도 가끔 긴 시간 요리하느라 지쳐 보이는 나와 어지러운 주방을 들여다보며 대충 하지 뭘 그렇게...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당분간 이 주방을 쉽게 나갈 것 같지 않다.

 

요리가 너무너무 재미있다거나 내가 한 요리를 맛있게 먹는 걸 보는 보람이 대단하다거나 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것 또한 무료하고 불안한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임을 아무도 모를 것이지만... 괜찮다.

 

지난해 여름 이사 오면서 전보다 넓은 주방을 갖게 되면서는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구운 생선에는 간장 앙념이나 고추장양념을 바르거나 조려서 비린내는 물론 감칠맛까지 더 낼 줄 알게 되었으며 미역국에는 엄마가 직접 만든 조선간장에 양파 한 개를 넣고 끓여 더욱 깊고 시원한 맛을 낼 줄 알게 되었으며 북엇국이나 호박요리는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감자채는 끓는 물에 살짝 익혀서 볶아야 으스러지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멸치볶음에 넣은 꽈리고추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넣는 것이 더 오래도록 형체가 유지되고 탄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샐러드에는 빵가루를 조금 넣어주면 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이 모든 방법이 요리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퇴직 후 요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지난해 10 월 집들이 때 온 식구들은 내가 준비한 요리에 조금은 놀라워했다. 특히 메추리알볶음 감자채볶음 멸치볶음 연근볶음 계란말이 시금치무침 부추무침 가지무침 등 밑반찬은 직접 한 거 맞냐고 사 온 거 아니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들에게 난 내 요리의 비법을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일단 유튜브라는 요리강사의 도움을 받으며,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귀찮더라도 한 공정을 더 하는 것이라고.

 

예를 들어서 감자채 전 같은 경우는 감자채를 끓는 물에 살짝 익히는 공정, 멸치볶음에 넣는 꽈리고추도 살짝 데치는 공정, 가지볶음이나 호박볶음도 소금에 살짝 저리는 공정, 닭볶음탕이나 기타 고기요리도 끓는 물에 한번 익혀 깨끗이 씻어내는 공정 따위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간편하면서도 건강까지 생각하는 조미료가 많아서라고, 똥을 따낸 굵은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내야 하는 국물은 코인으로 간단해졌으며 참치액은 어떤 요리도 맛이 없을 수 없게 만든다고 겸손함도 놓치지 않았다.

 

 

우윳빛 뽀얀 육수는 아니지만 맛은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는...
                     

 

 

닭곰탕은 한 달에 한번 정도 하는 나의 최애 요리 중 하나다. 한번 해 놓으면 이삼일은 먹을 수 있으며 라면을 좋아하는 가족들에게 꼬꼬면(요즘은 안 보이는 듯... 한 때 개그맨 이경규 님이 개발한 거라고 인기였는데)을 해줄 수 있어서다. 그냥 생수에 끓이는 라면보다 닭고기도 푸짐한 닭곰탕에 끓여 내는 라면은 맛은 물론 영양면에서도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짧은 독서와 병행할 수 있는 요리이기도 하다.

 

하림 토종닭 18호를 나는 보름도 전에 재래시장에 갔다가 두 마리를 샀다. 가격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 마리를 사는 것보다 두 마리를 사면 2천 원이 할인되는 거였다. 처음에 한 마리를 달라고 했는데 판매하는 분이 이왕 사는 거 싸게 두 마리를 사라고 했다. 귀가 얇고 결정 장애가 약간 있는 나는 글쎄요.. 두 마리는 좀... 식구도 얼마 안 되고... 하면서 망설였더니 하이고 별 걱정을 다 하네... 한 마리는 냉동시키면 되죠... 하면서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벌써 두 마리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닭을 냉동시켜도 돼요? 내가 물었고 그럼요... 요즘 냉동 안 시키는 게 어딨어요? 하면서 검은 봉다리에 넣어 건네주었다. 아주 묵직했다. 한 마리만 사려고 가지고 온 작은 시장바구니가 꽉 차고 그 무게에 어깨가 늘어졌다.

 

... ... 이러지 않기로 했으면서... 재래시장에 오면 이게 문제라니까... 생각했던 거보다 늘 너무 많이 사는 거... 싸고 싱싱한 걸 눈으로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그렇게나 어렵냐...

 

그렇게 자책하면서 두 마리를 사 들고 돌아서는데 한 아가씨가 닭 한 마리 달라고 했다. 판매원이 나한테 했던 것처럼 두 마리 어쩌고 했으나 그 아가씨는 한 마리만 주세요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대화를 뒷전으로 들으며 나는 내 행동을 후회했지만 다시 돌아가 내 결정을 번복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마리를 사서 한 마리를 해 먹고 보름 정도 지나서 꽝꽝 언 닭을 꺼내 냉장고로 이동시켜 밤새 자연해동시켰다.

일단 기름 덩어리인 부위와 기름끼가 많이 붙은 껍질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곰솥에 넣고 소주를 부어 끓인다. 후루룩 끓으면 바로 불을 끄고 꺼내야 한다. 버릴 물이기 때문에 육즙이 조금이라도 빠져나가면 안 된다. 물은 버리고 닭은 다시 한번 씻는다. 커다란 곰솥에 물을 넉넉하게 붓고 닭과 함께 양파 마늘 대추 대파 청양고추를 넣고 한 시간 가까이 끓인다.

 

물컹해진 마늘 대추 대파 청양고추 등은 건져내 버리고 닭은 꺼내서 식힌 후 위생장갑을 기고 살과 뼈를 분리한다. 분리하면서 맛있는 부위인 닭다리살이나 닭가슴살의 일부는 소금을 찍어 먹기도 한다. 한 시간 가까이 익혀서 바로 나온 부들부들하고 따끈따끈한 닭고기는 너무 맛있다. 옆에 남편이나 아들이 있다면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소금을 찍어 막 강제로 입에 넣어 줬을 것이다. 남편과 아들 아닌 누구라도 있다면... 혼자 먹기 아까운 맛이다. 알뜰하게 공들여 살을 발라낸다.

살을 발라낸 뼈는 다시 국물에 넣어 또 30분 정도를 끓인다. 국물은 점점 누르스름한 우윳빛이 된다. 유튜브나 티브이에 나오는 닭곰탕은 완전 뽀얀 우윳빛인데 내가 집에서 하는 닭곰탕 국물은 그렇게 뽀얀 우윳빛이 되지 않는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구한테 대접할 음식은 아니니까.

 

30분 정도가 지나 뚜껑을 열어본다. 이미 거의 우러난 것 같은데도 나는 조금 더 조금더 하면서 자꾸 끓인다. 끓일수록 국물이 더 맛있어지고 영양분도 풍부해질 것 같아서다. 충분히 더 이상 우러날 게 없다 싶으면 뼈도 건져 낸다. 그런 후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을 해서 손으로 주물주물 으스러뜨린 살을 넣고 또 20분 정도 끓인다. 가늘게 찢은 살을 그대로 넣기도 하지만 손으로 주물주물 으스러뜨려서 넣으면 국물이 더 구수하고 걸쭉해지는 것 같다. 거의 다 완성된 것 같으면 제대로 잘 된 건지 알아보기 위해 그릇에 떠서 대파를 쫑쫑 썰어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선 채로 먹어 본다. 좀 밋밋한 거 같으면 더 끓이고 괜찮다 싶으면 불을 끈다.

 

다 끝낸 보람과 포만감으로 싱크대 가득 어질러진 뒷설겆이는 뒤로 미루고 주방 한 켠에 놓인 탁자에 앉아 믹스커피를 타서 천천히 음미하듯 마시며 충분히 끓기를 기다리는 사이사이 읽던 책을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읽는다.

 

나의 주방 한 켠에 벽에 딱 붙여 놓은 탁자가 있다. 가스레인지와 아주 가까이 기역자로 꺾인 곳이다. 간단하게 차나 커피를 타 먹을 수 있는 무선주전자와 달력과 독서대와 팬꽃이와 핸드폰충전기가 놓여 있다. 주방엔 4인용 넓은 식탁이 있지만 나는 세로 40cm 가로 100cm인 좁고 긴 이 탁자에서 요리하는 사이사이 책을 읽는다. 벽에 바싹 붙어 있어서 맘이 안정되고 편안하고 집중이 잘 된다. 여긴 나 만의 자리다. 그 누구도 앉지 않는다. 주방 옆 세탁실에서 세탁기가 돌아갈 때도 여기 앉아 있곤 한다. 이럴 때 읽는 책은 절대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소설책이나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할 철학책 이어는 안 된다. 짧은 에세이가 가장 좋다.

오늘 느릿느릿 4시간 가까이 닭곰탕을 하면서 사이사이 내가 읽은 책은 김서령 산문집 '참외는 참 외롭다'였다.

 

<... 외는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 다른 식물을 대개 쌍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데 박과 식물만은 홀로 꽃피니 열매도 하나뿐이다. 사과도 배도 대추도 감도 곁엣 놈에게 의지하건만 외만은 아니다.

홀로 피어야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다. 곁엣 놈에게 방해받지 않아야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 단독자로 용맹정진해야 몸 안에 단맛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다. 외가 홀로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디고 또 누리는 것은 그 길만이 안에서 익어가는 성숙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 진정한 의미다.

................................

현대인의 외로움엔 원래의 의미 대신 상당량의 '센티멘틀' '당분' '휘청거림'이 가미돼 버렸다. 시장과 미디어는 외로움을 와인이나 초코핏, 커피 같은 기호식품에 끼워 팔고 드라마와 가요는 외로움을 달달하게 과잉포장해서 값싸게 유통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린 진정한 외로움, 외로움에 담긴 꿋꿋한 다릿심과 싱그러운 땀내와 청량한 고요를 잃어버렸다..... 72p >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가까이까지 나는 닭곰탕을 만들었다. 한두 번쯤 이 시간을 누군가랑 공유해볼까 싶기도 했다. 가족톡이나 밴드에, 아니면 친구들 단톡에 사진과 함께 올려볼까...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먹으러 오라고 해 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난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도 친구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전화하지 않았다.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느릿느릿 씻고 다듬고 끓이고 식히고 맛보고 먹었을 뿐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노우 프라블럼...

이렇게 한 두 번 중얼거린 것은 혼자 있는 시간에 가끔 중얼거리는 습관일 뿐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참외처럼 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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