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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 10 (마지막 회)

머니앤파워 2024. 8. 2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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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최고의 운전연수... 그리고 그 후...

(머니파워=황진교) 이 글은 2021 11 8일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2022 1 12일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까지의 웃음과 눈물의 때늦은 도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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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6일 오전 11시 무렵... 낯익은 흰색 승용차가 들어온다. 부드럽게 커브를 돌아 노란 산수유꽃 만개한 화단 앞 직사각형 주차라인 안에 한 번에 정확하게 주차한다. 그 모습이 오늘따라 멋지고 훌륭하고 부럽다. 차에서 내려 어색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를 향해 환하게 벙긋 웃으며 다가온다.

친구는 2년 전 유방암 2.5기 선고를 받았고 괴로운 항암과 지루한 요양원 생활을 씩씩하게 견뎌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3개월이 지났다. 내가 이번엔 진짜로 운전면허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몇 번의 불합격에 의기소침해졌을 때,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며 어린애처럼 징징댈 때 가장 많은 격려와 힘을 준 친구였다. 처음부터 나의 운전연수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나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혹시 가르침을 주고받다가 맘을 상해 불편한 사이가 될까 하는 염려는 전혀 없었다. 조금이라도 친구의 몸에 가장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스트레스가 될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그러나 전문 강사에게 연수를 받고도 많이 부족하여 남편에게 배우려다가 격하게 싸움을 한 후에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친구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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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 가자!"

친구는 조수석에 앉더니 바로 결정해 버렸다.

"? 내가 운전해서?"

"그럼! 연수받았다며? "

"너 미쳤니? 돌았니? 목숨 내놨어? 날 어떻게 믿고... 보조브레이크도 없이... 못해 나 못해..."

"그래야 늘어... 출발해...“

친구는 단호했다. 일체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그 흔들림 없는 단호함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래, 일단 믿자, 너를 믿고 나를 믿고... 가보자...

안산 대부도 일대는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특히 친구는 십 년도 넘게 운전해서 자주 다닌 곳이라 그곳 지리라면 손금 보듯 환하다고 했다.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도 길안내를 척척 했다.

"저기서 좌회전... 차선 바꾸고... 속도 좀 내야지... 직진... 우회전... 천천히... 힘 빼고.. 앞차를 봐... 멀리 봐야지... 그래... 잘하고 있어..."

어느새 도심을 벗어났다. 칼국수집과 횟집이 즐비한 상가도 지나고 양쪽에 바다를 둔 해안도로를 달렸다.

"이런... 바닷물이 다 빠졌네... 양귀비가 벌써 폈네.. ... 꽃 봐라... 날씨 좋다...."

하면서 차창 밖의 풍경에 취한 듯 하다가도

"좌회전 좌회전... 좀 빨리 돌아줘야지 뒷사람들 생각해서....“

하면서 본연의 임무로 바로 돌아왔다.

"나 초보야...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말랬어..."

"다른 사람과 흐름을 맞춰야지... 초보 때 잘 배워둬야 해... 평생의 운전 습관이 될 수도 있어... 좋아... 이럴 때 달리는 거야 70까지 달려... 봐봐... 커브길 나오지? 좀 천천히 줄이고..... 이제 쭉 뻗어 있지? 차도 별로 없지? 이럴 때 달리는 거야...달려... 시선 멀리 멀리...저 멀리 신호등 보이지? 조금씩 줄여 조금씩... ... 그렇지... 바로 그거야... 잘하고 있어... 잘 하고 있어...여기 어딘지 알지?"

"몰라..."

"시화방조제... 시화나래전망대... 우리 왔었잖아...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지 아마? 바닥이 투명한 유리전망대여서 촌스럽게 무서워서 벌벌 떨었잖아..."

"그러네...”

친구의 말은 길었고 내 대답은 무성의할만큼 짧았다. 운전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아직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도 감동이, 뜨끈한 감동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감동의 순간을 친구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길을... 내가... 내 손으로... 운전해서... 달리다니... 운전하면서... 이렇게 대화도... 나누다니... 맨날 네가 운전하는 차에 탔었는데.... 이런 날이... 이 생에선 없을 줄 알았는데....... 웬일이야 웬일... "

친구가 화답했다.

"나도 없을 줄 알았다... 장하다 장해...장하다 내 친구..."

평일의 서해안 해안도로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목적지 대부도를 지나 영흥대교를 넘어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까지 달렸다. 물론 친구의 결정이었다.

처음의 긴장감이 감소되면서 무섭기만 하던 속도가 희열로 다가왔다.

차창을 닫고 있음에도 멀리서부터 달려온 바람이 내 귓가를 스치듯 부딪쳤다가 다시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질주본능이라는 것인가... 속도를 낼수록 나는 땅에 닿은 네 개의 바퀴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공중을 달리는 듯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아찔한 속도에 겁쟁이 찌질한 나란 존재는 날아가버리고 내가 아닌 한층 고양된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와우.... 나 어때? 멋져? “

어느 순간, 나는 이렇게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렸다.

"멋져 아주 멋져...."

친구가 흔쾌하게 응수해주었다.

자신감에 넘쳐서 신나게 달려왔는데 십리포 해변 앞 주차장에 이르러서는 갈팡질팡 버벅거렸다. 주차는 아직 감도 잡지 못한 것이다. 친절하게 가르쳐주던 친구도 답답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 내지르고 싶은 성질을 참는 것도 같았다.

아무려나... 나는 거기까지 운전해 간 게 어디냐고 그저 나 자신이 놀랍고 감탄스러워 친구가 화를 내도 욕을 해도 그래 그래 웃으며 받아들일 것 같았다. 뺨을 때려도 무릎을 꿇려도 다 용서될 것만 같았다.

바닷가를 좀 거닐려고 차에서 내렸더니 의외로 바닷바람이 거칠고 차가웠다. 더구나 꽃피는 4월 봄날이라고 친구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다. 가지가 밑동에서부터 사방팔방 구불구불하게 자라 수많은 뱀들이 서로 엉켜 있는 듯하여 해변의 괴수목이라 불리는 소사나무 군락지가 장관인 십리포 해변도 언젠가 우리가 왔던 곳. 추억을 더듬으며 걷다가 바람에 쫓겨 다시 차로 돌아와 차 안에서 커피를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해물칼국수를 먹고 지난주 연수강사와 주차연습을 하기 위해 왔던 유원지의 넓은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갈 때보다 훨씬 좋아졌어. 운전이 훨씬 안정되고 부드러워..."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많이 달라졌어..."

"진짜? 정말? "

"그래.... 진짜... 정말..."

우리 외에도 주차 연습을 하는 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들이 더러 보였다. 한쪽에서는 싸움을 하는 듯한 큰 소리가 오갔다.

친구가 저녁 약속이 있다 하여 연습은 아쉽게도 일찍 끝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브레이크 밟는다는 것이 액셀을 밟아버린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친구가 급하게 핸들을 꺾어 주었고 나는 혼이 나간 듯 멍해졌다.

"괜찮아 괜찮아 앞으로 이런 순간 수도 없이 경험할 거야 괜찮아 괜찮아...."

친구가 열심히 다독였지만 벌렁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집 앞 주차는 친구에게 미련 없이 냉큼 맡겼다.

친구는 올 때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주차라인을 벗어나 부드럽게 커브길을 돌아 멀어져 갔다.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졌다. 갑옷을 입고 전쟁터를 누비다가 겨우겨우 살아 무사히 귀환한 것처럼 탈진조차도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그 감격의 순간은 짧게 끝났다. 묵직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다시 또 나서야 할 전쟁터가 아닌가... ... 친구도 없이.,. 혼자...

오전 11시부터, 칼국수 먹고 잠깐 쉰한 시간 정도를 빼면 거의 다섯 시간을 운전한 것이다.

내가, 내가, 내가 말이다.

놀라워라...

다음날 출근길에 깜짝 놀랐다. 아파트 단지 안과 도로옆 학교 앞 곳곳에 꽃들이 활짝 활짝 피어 있었다. 나뭇가지도 어느새 연둣빛 새잎들로 오밀조밀 고왔다. 어제는 보지 못했는데... 아니 꽂봉우리를 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나 꽃들이 피었을까...매년 봄마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봄날은 간다 노래도 한 번도 흥얼대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활짝 핀 꽃들에게 작별 인사라도 하듯이 천천히 걷다가 조금씩 걸음을 빨리 했다.

온 줄도 몰랐던 나의 봄은 이렇게 가고 있었지만 이번 해의 봄은 조금도, 조금도 아쉽지가 않았다.

친구의 연수는 그 이후로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친구는 나에게 미리 알아둔 넓은 공터에서 맘껏 혼자 운전해보라고 하고는 캠핑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기도 했다. 나는 자유롭게 방목된 양이었고 친구는 양치기 소년에 다름 아니었다친구의 연수 방법에 나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이 가슴이 뻐근해올 만큼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에필로그 ----

그 해의 여름 초입에, 나는 드디어 친구가 알려준 카페에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며 운전해 갔다. 주차된 친구의 차를 발견하고 그 옆에 차를 주차시켰다. 물론 한 번에 못하고 여러번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겨우 했다. 나는 친구에게 선물로 준비한 백화점의 브랜드 벙거지 모자를 내밀었다. 친구는 특유의 쑥스러워하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꺼내 썼다. 얼굴이 작은 친구라 모자는 더욱 잘 어울렸다. 친구는 그제서야 고백했다.

그날, 나를 처음 운전연수 해 줬던 그날, 나를 운전석에 앉히고 조수석에 앉아 나의 운전을 가르치고 지켜보며 처음으로 대부도에 간 날, 약속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고... 집에 돌아가 바로 꼬꾸라졌다고... 사실은 친구도 엄청 긴장했다고... 그 긴장감이 나에게 보일까봐 더욱 긴장했다고... 

나는 미안하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뒤늦게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연수까지 받은 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거의 새 차나 다름없는 우리집 차는 나로 인해 긁히고 찌그러지고 우그러지기를 여러 번 하면서 수리비로도 이백만원 가까이나 썼다.

그런 댓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운전이 서툴다. 이 평가는 나보다 내 가족의 판단이 더 확고하다. 특히 남편은 둘이 함께 가는 가까운 나들이나 쇼핑 때도 절대 나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지 않는다.

나 또한 오랜 생활 습관 때문인지 웬만한 거리는 운전해 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더 편하고 좋다. 물론 기계치에 길치인 나의 성향도 한 몫 단단히 하겠지만.

가장 아쉬운 것은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고향집에 나 혼자 운전해서 내려가는 꿈을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50대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 글을 마치겠습니다. 부족하고 서툰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앞으로 좀 더 재미 있고 의미 있고 성숙한 글로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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