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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 8

머니앤파워 2024. 7. 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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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더니...

(머니파워=황진교) 이 글은 2021 11 8일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2022 1 12일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까지의 웃음과 눈물의 때늦은 도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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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2일의 두 번째 도로주행시험은 오후 1시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시험전날 운전 학원에서 시험 시간을 오전 11시로 두 시간 앞당겨 볼 수 있겠느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두 시간이면 도로주행 유투브 동영상을 몇 번은 되풀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능하긴 하지만...이라고 대답한 후에 조심스럽게 왜냐고 되물어 보았다.

"그 시간에 도로에 차가 더 없으니까요...“

짐작도 못한 이유였다.

아하... 그 이유라면 무조건이지...

"아 예...  11시까지 갈게요..."

뜻밖의 배려였다. 물론 나에 대한 배려 차원이기보다 학원에서 다른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에 대한 배려라고 믿기로 했다.

우황청심원을 준비할까 말까 잠깐 망설이다가 또 샀다. 나보다는 훨씬 훨씬 젊은 나이에 면허증을 취득한 친구들도 거의 두 세번은 기본적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지금 두번째, 떨어지더라도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간밤에 눈이 내렸고 기온이 급강하했다. 빨간색 노스페이스 패딩을 꺼내 입었다. 웬일인지 어젯밤부터 빨간색 패딩을 입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도 지났고 너무 빨간색이어서 잘 입지 않는 옷인데 말이다. 빨간색과 시험운이 관계가 있으려나... 좋은 쪽인가 나쁜 쪽인가... 네이버에 찾아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학원에 도착하여 수강카드를 센싱 하는데 삑삑 소리를 내며 읽히지가 않았다. 몇 번을 해도 되지 않았다. 살짝 불안해졌다. 이건 무슨 전조증상일까? 지금까지 잘만 되던 것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무실 쪽을 돌아보았다. 여직원 둘 다 상담 중이었다. 내 센싱 방법이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한번 신중하게 천천히 센싱...

삑 삐빅...

기계를 상대로 했다가 잘 안되면 일단 겁부터 먹고 긴장하는, 그리고 무조건 기계 잘못이 아니라 나의 미숙함 때문이라고 먼저 단정해 버리는 못 말릴 기계치인 나.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 볼까 두리번거려 보지만 모두 각자 바빠 보였다. 가까이 있는 아무나 붙잡고 부탁을 할 용기는 없다. 그래서 눈이 마주치는 누구라도 도움을 원하는 난처한 표정을 읽을 수 있도록 한껏 안타까운 눈길로 다시한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다시 조심스럽게 센싱을 했다. 또 삐비빅...

나의 인상이 한없이 구겨진 그때

"이쪽으로 와보세요"

하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감색 항공잠바를 입은 40대 정도의 남자직원이 사무실 맨 끝 회전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손짓했다. 그는 사무실의 맨 앞쪽의 빈 컴퓨터 앞으로 나와 앉으며 뻘쭘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손짓했다. 나는 득달같이 그의 앞으로 갔다.

"이름이 뭐죠?"

그는 내가 불러주는 내 이름을 입력하고 컴퓨터로 내가 건네 준 수강카드를 받아 들고 능숙하게 타닥 쓱쓱 했다. 그런 후 다시 수강카드를 돌려주며 농담도 같이 건네주었다.

"됐어요...오늘 합격할 거 같은데요..."

"진짜요? 감사해요... 진짜 합격했으면 좋겠어요...진짜요..."

뜻밖의 기분 좋은 농담이라 나는 좀 과장되게 간절함을 표현했다.

시험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학원안은 긴장과 활기로 점점 더 쑬렁거렸다. 빼곡하게 들어찬 수험생들과 파일을 손에 든 시험관들 사이에서 일주일 전 첫 도로주행시험 때의 시험관 모습이 보였다. 희끗희끗한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마르고 단단하고 강한 인상의 퇴역한 해병대원 같은 시험관이 수험생들 사이로 내 가까이 다가왔다. 눈이 마주치자 목례를 하면서 눈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분도 나를 눈으로 아는 체 하는 것 같았다. 첫 시험 때보다 시선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마스크를 써서 겨우 눈만 볼 수 있는데도 그런 감정들을 알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구면이라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고 조금 전의 뜻밖의 친절에 기분이 한껏 고무된 상태라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더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맨 먼저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 이름을 호명하는 시험관은 바로 그 시험관이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얼떨결에 첫 시험주자가 되어 바로 운전석에 앉았다. 뒷좌석엔 20대 남자애가 참관인 겸 다음 응시자로 같이 탔다. 시험관이 코스를 선택하라고 태블릿 피씨를 내밀었다. 비교적 쉬운 A 코스가 랜덤으로 선택되었다.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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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입니다... 사인하세요..."

시험관이 태블릿피씨를 내밀었다.

"... 진짜요? 진짜요? 감사해요..."

사선을 넘어온 듯 목소리도 떨리고 사인하는 손끝도 달달 떨렸다.

"겨우겨우 된 거 아시죠?"

시험관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나의 손을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알죠 알죠... 덕분인 것도 알아요.... 정말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특별히 실수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실수를 첫 시험 때처럼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험관이 사이 사이 옆에서 몇 번 힌트를 준 것은 알았다.

'차선변경 빨리 해야지요... 차 없잖아...'

'깜빡이 깜빡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운전석을 B코스 시험 볼 뒷자리 남자애에게 내어주고 뒷자리로 옮겨 앉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성취감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나는 뒷자리 깊숙이 온몸을 파묻었다.

알려줄까 말까... 아무 소식 없으면 또 떨어진 줄 알겠지... 기대도 안 하고 있을 거야... 두세 번 더 떨어져야 될 것 같다고 예견해 놨으니까... 그러니까 밤에 짜쟌... 하고 알려주면... 더 놀라고 더 좋아할 텐데... 됐어... 유치하게... 그동안 입이 근질근질하여 참을 수도 없을 거면서...

하여, 톡을 보냈다. 시험 중인 차의 뒷자리에서.

글 대신 재밌는 이모티콘으로.

남자애도 합격했다. 시험관과 나누는 얘기 들어보니 남자애도 두 번째였다.

학원 앞에 와서 시험관과 내렸다.

"진짜 감사해요... 두 세번 더 떨어질 거라 예상했는데..."

너무 좋아서 또 감사인사를 했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습 많이 하세요... 늦은 나이에 하신 거 보면 장롱면허가 아니라 진짜 운전하려고 하신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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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 8일 학원에 등록하면서 시작했으니 거의 두 달이 걸렸고 장내 기능 추가교육과 두 번의 재시험 그리고 도로주행 재시험으로 약 150 만원 정도의 돈이 들었다.

일주일 후 면허증 받으러 학원으로 오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숙제를 이제 겨우 끝낸 듯 홀가분했다. 일상생활을 무겁고 불편하게 짓누르던 체증이 비로소 넘어간 듯 가볍고 개운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학원과 시험에 빼앗겼던 시간과 휴무를 되찾아서 좋았다.

자가운전자로 한 10... 좀 멋들어지게...생활 할 수 있을까...

시험시간 변경, 빨간색 패딩, 고장 난 수강카드, 합격할 것 같다던 직원의 농담, 슬며시 도움 준 시험관님...

... 이 모든 게 나의 합격을 위한 움직임이고 기운이었어...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더니...

그런 생각에 혼자 푸슬푸슬 웃으며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나의 카톡에 공유 저장해 둔 학원 코스별 도로주행, 차선 맞추는 요령, 좌우회전방법, 진로변경 잘하는 법. 핸들링하는 법. 이렇게 하면 실격입니다 등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하나 다 삭제해 나갔다.

잘 가라 ... 그동안 고마웠다... 인사도 잊지 않았다.

피로가 파도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오랜만에 낮잠을 자고 싶어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어쩌면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아직도 작은 성취 하나로 생에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는 내가 한없이 유치찬란했지만 이번만은 너무 나무라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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