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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그때 좀 너무하셨어요.

머니앤파워 2024. 9. 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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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배성사 안 하셨지요? 영성체 하면 안돼요...”
“저 엄청 친한 수녀 친구 있어요...편지도 자주 주고받구요...”

 

 

(머니파워=황진교)  나는 고등학교 때 갓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부임해 오신 총각선생님을 좋아했다. 그 선생님이 천주교인이어서 나는 오로지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여 세례도 받았다. 모든 서류나 이력서의 '종교' 란에 '천주교'라고 당당하게 기입하는 게 좋았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그리 깊지 않았는지 그 선생님이 잊히면서, 청춘을 유혹하는 다른 유흥에 빠지면서 서서히 성당을 멀리하게 되어 어느 시기부터인가 냉담자가 되어 있었다. 냉담인 채로 세월은 흘러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래도 어딘가 지나가다가 성당의 십자가가 보이면 헤어진 연인을 만난 듯 애틋해져서는 마음속으로 성호를 그으면서 조만간 꼭 다시 나갈 거야 마음먹기도 했다.

 

30대 중반의 나는 경기도 신도시에서 살면서 전업주부에서 벗어나 서울의 출판사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육체적 피로보다 어쩐지 내가 그려왔던 삶의 그림에서 자꾸 멀어지는 듯 초조하고 불안하여 자주 우울해하고 슬퍼하는 날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부터인가 주말 아침마다 혼자 산책을 나가고 있었다.

어느 주말 아침 산책길에 평소 가던 길보다 더 멀리 갔다가 산 밑에 있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성당을 발견했다. 아름답게 헤어진 연인을 만난 듯 반가웠지만 바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성당 안에서 귀에 익은 찬송가도 흘러나왔는데 어쩐지 닫힌 문은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듯 견고해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산책 때마다 그 성당까지 갔다. 지붕 위의 십자가를 올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성호를 긋고 서성이다가 돌아왔다. 결혼을 한 기혼자가 다시 성당에 다니려면 남편과 함께 신부님 앞에서 혼배성사를 해야 한다는 교리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몇 번 말해 보았지만 종교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남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남편의 완강함에 쉽게 포기했다. 당시의 나는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설득시켜서 기어이 신부님 앞에 데리고 나갈 만큼 남편에 대한 믿음도 신에 대한 믿음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산책 때마다 성당까지 걸어갔으며 가끔은 텅 빈 성당에 들어가 잠시 앉아 있다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은 이유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지금은 도둑처럼 드나들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게 돌아갈 것이며, 성당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려 줄 것이라 믿었다. 더 오래 걸리고 더 속세에 찌든 모습일지라도 받아줄 것이라 믿었다.

그날도 혼자 터덜터덜 걸어 성당에 도착했다. 마침 미사시간이었다. 낯익은 찬송가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들여다본 성당 안은 신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신도들은 뒤쪽에 빼곡하게 서 있었다. 중간중간에 수녀님들도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성스럽고 경건한 분위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기 전에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올 생각이었다. 거친 벌판을 허랑방탕 헤매다 돌아온 탕자 같은 마음이었다.

 

드디어 신부님의 밀떡을 받아먹는 영성체 시간이 되었다. 신도들이 두 손을 합장한 채 찬송가를 부르면서 중앙으로 나가 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때쯤 성당을 나갔어야 했는데 어쩐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영성체의 긴 줄에 끼여들고 싶은 욕심까지 났다. 나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그 줄에 합류했다. 신도들이 많았으므로 조금 어색하더라도 티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집안 어딘가에 미사포가 있을 텐데... 다음엔 미사포를 가지고 와야지... 생각하면서...

신부님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제서야 내가 '하나님의 몸'이라는 밀떡을 받아먹어도 되는 자격이 있나 두려워졌다. 신부님 앞에서 내쳐지는 건 아닌가 겁도 났다. 지금이라도 돌아설까 돌아서 버릴까 갈등하면서도 나는 신도들과 함께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무사히 밀떡을 받았다. 나는 더욱 경건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한껏 숙이고 합장한 손에 힘을 주고 돌아 나오고 있었다.

그런 내 앞을 한 수녀님이 가로막고 섰다.

 

"자매님 결혼하셨지요?"

 

묻는 목소리가 잘못이 없어도 주눅이 들만큼 엄했다. 내리깔고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려 흘끗 본 수녀님은 풍채가 좋으시고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그리고 목소리만큼이나 엄한 표정이었다. 오래전 내가 성당에 다닐 때 만났던 그 온화하고 다정한 수녀님의 얼굴이 아니었다.

 

"..."

 

나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위의 신도들은 합장하고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나와 수녀님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저절로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남들처럼 했는데... 그런 생각의 끝에 수녀님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배성사 안 하셨지요?"

 

"하려고 했는데..."

 

얼굴이 달아오르고 입이 굳어졌다. 아까보다 더 많은 신자들이 나와 수녀님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혼배성사를 하지 않았으면 영성체 하면 안 돼요... 모르셨어요? "

수녀님의 목소리는 더욱 엄하고 강경했다. 나는 사실 혼배성사를 하지 않은 기혼자는 영성체를 하면 안 되는 것까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몰랐다고, 죄송하다고만 하면 되었을 것을... 나는 부끄러운 중에도 수녀님의 공개적인 질타에 나도 모르게 반항심이 솟아올랐다.

 

"그래도... 세례도 받았고... 남편도 설득 중이고요... "

 

그러나 금방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더듬거리며 변명하는 자체가 나의 무너진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 주기는 커녕 더한 부끄러움을 안겨줄 뿐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신도들이 나와 수녀님의 주변을 둥글게 에워싸면서 모여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광장 한복판에서 심판을 받는 듯 어지럽고 무서웠다. 그러나 무슨 배짱인지 나는 끝내 이런 말까지 해버렸다.

 

나는... 수녀 친구도 있어요... 수녀 친구와 엄청 친하거든요... 편지도 자주 주고받아요..."

 

싸움에서 불리함을 느낀 어린이가 마치 집에 힘 센 형이 있다고 자랑하듯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쫓겨나듯 성당을 빠져나왔다. 수녀님이 아니라 신에게 내쳐진 듯 참담했다. 한동안 나는 그 참담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성당에 발길을 끊었으며 또다시 기약 없는 냉담자로 돌아섰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이 있다.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가 아니라 나를 어디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나무라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내가 그 당시 다시 냉담자로 그리 쉽게 돌아섰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수녀님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는 때가 아니었나보다고... 아직 좀 더 헤매이고 방황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때가 되면... 언제고 꼭 부르실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냉담자다. 지금 사는 곳에도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 가는 길에 성당이 있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성호를 긋는다. 실제로 팔과 손을 이용해 성호를 긋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만 긋는다. 누군가 종교를 물어오면 망설이지 않고 '천주교'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가끔 나를 모질게 나무랐던 그 수녀님에게 묻는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요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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