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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노모와 오 남매의 빛축제 광명동굴 관광기

머니앤파워 2024. 11. 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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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 씨는 길고 긴 회심곡 중에서 죽음의 사자가 찾아와 데리고 가려할 때의 소절을 그 빛으로 휘황한 동굴을 아들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흥얼거린 것이었다. 나이 구순에 이르면 죽음도 저승길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가 싶었는데... 혼비백산 나죽겠단다... 송자 씨는... 환하고 휘황한 저승길일지언정 혼비백산 나죽겠네...라고 했다.

     빛의 광명동굴을 연인처럼 걷는 아들과 노모

(머니파워=황진교)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ㅇㅇ리에 사는 홍송자 씨는 늦가을의 토요일 늦은 오후 큰아들 부부 큰딸 부부와 함께 안양 둘째 딸 집에 왔다. 큰아들은 한 동네에서 전원주택에 분가해 살고 큰딸은 한 시간 거리의 이웃 시에 산다. 둘째 딸은 지난 8월 안산에서 둘째 아들이 사는 안양으로 이사를 왔다. 오 남매와 그에 딸린 식솔들이 저마다의 일정으로 할까 말까 망설이며 미루던 집들이 계획은 홍송자 씨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구순의 노모 홍송자 씨가 안전벨트에 묶여(홍송자 씨는 안전벨트를 답답하다고 자꾸 끌어내려 외출 때마다 늘 차 안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앉아서 이동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흔쾌히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그렇게 홍송자 씨와 오 남매와 그 짝들과 그리고 손주들까지 넷째인 둘째 딸 집에 토요일 저녁 다 모였다. 푸짐한 먹거리와 함께 시끌벅적 왁자하게 집들이를 한 다음 날 시골로 내려가기 전에 가까운 광명동굴을 구경하고 내려가시라 제안한 건 둘째 아들이었다.

 

북적거리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서두른 덕분에 오전 10 30분 정도에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때마침 광명동굴 빛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반쯤 잎을 떨군 나무들이 즐비한 입구는 이른 시간이라 조금 쓸쓸한 풍경이었지만 날씨만큼은 축복인 듯 따뜻했다. 어느새 둘째 아들은 홍송자 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들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는 키에 약간 어깨가 안으로 오그라든 자그마한 몸피의 송자 씨는 자신의 전 존재를 둘째 아들에게 내맡긴 듯 다소곳하게 붙어 있었다. 챙이 조금 있는 검은색 니트모자에 검은색 넓은 체크무늬가 보일 듯 말듯한 도톰한 빨간색 가디건과 갈색 머플러와 보라색 바지 편안 안 단화를 신어 이번에도 여전히 당신 뜻대로 수수하게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날씨가 추울 지도 모르니 더 두꺼운 옷을 입자는 큰딸의 말을 이번에도 고집스레 듣지 않았다. 날씨가 추웠다면 큰딸에게 퉁박을 들었겠지만 춥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이니 하늘은 아마도 당신 편인 듯했다.

 

어둑어둑한 동굴로 대가족이 들어섰다. 서로의 손을 꽉 잡은 둘째 아들과 송자 씨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둘째 딸과 첫째 딸이 따르고 그 뒤로 큰아들과 막내딸과 사위들과 며느리들과 손녀가 뒤따랐다. 동굴 전체를 통째로 전세 낸 듯 다른 관람객들은 드문 시간이었다. 둘째 아들의 손을 잡고 앞서 가던 송자 씨가 가족들을 확인하듯 가끔 뒤돌아 보았다. 그러면 둘째 아들이 옆에서 걱정 말라고 엄마 새끼들 다 잘 따라오고 있다고 큰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드디어 저 앞에 빛이 보였다. 빛축제라더니 화려한 빛의 동굴이 시작되었다. 둥그런 타원형의 동굴 전체가 모양과 색깔을 바꿔가며 울긋불긋하고 번쩍번쩍거리는 빛들의 축제장이 되었다. 은빛을 내는 가는 주렴들이 동굴 천장에서 바닥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다. 빛의 주렴을 걷어내며 그 빛 속을 걸어가던 송자 씨가 저승길 같구나... 저승길 같아...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둘째 아들에게 잡히지 않는 반대쪽 손을 들어 빛을 만지는 듯 박자를 맞추는 듯 흔들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저승 같구나 저승길 같구나 하는 송자 씨의 중얼거림은 뒤따르던 둘째 딸의 귀에 어렴풋이 들려왔다. 둘째 딸은 그 중얼거림을 들은 후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슬픔의 덩어리를 느꼈다. 나이가 구순이 되면 처음 보는 아름다움 앞에서 저승길을 떠올리기도 하는가... 싶었다. 잠깐 슬픈 상념에 빠져 든 둘째 딸의 귀에 송자 씨가 부르는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송자 씨가 즐겨 부르는 트롯인가 싶어 귀 기울여 보았으나 트롯이 아니었다. 스님의 염불 같기도 하고 어릴 때 동네에 상여가 나갈 때 들은 상여소리 같기도 했다. 둘째 딸은 혼자만 느낀 것 같은 슬픔을 털어내려 크게 소리치듯 송자 씨에게 물었다.

"엄마 그 노래 제목이 뭐야? 트롯이 아닌 것 같은데..."

송자 씨는 듣지 못한 듯 돌아보지 않았다. 노랫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엄마 그 노래 제목이 뭐냐고?"

둘째 딸이 한번 더 크게 소리 질렀다.

그랬더니 둘째 오빠가 몸을 굽혀 송자 씨의 귀에 대고 물었고 이어서 고개를 돌려 여동생인 둘째 딸을 향해

"회심곡이란다 회심곡"

하고 말해 주었다.

... 회심곡.... 불교 노래... 어쩐지...

그러고 보니 팔짱을 끼고 빛의 주렴을 걷어내며 빛들의 호위를 받으며 빛 속을 걸어 들어가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꼭 이승에서의 삶을 하직한 노모를 저승에 데려다주는 장면 같아 보였다. 천천히 그 뒤를 따르는 식솔들은 송자 씨의 저승길을 마중하는 것 같았다. 빛이 어른대는 저마다의 얼굴에 언뜻언뜻 보이는 그늘은 이별을 앞둔 자의 슬픔 같았다. 또다시 슬픔의 덩어리가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주위에서는 빛이 바뀔 때마다 탄성이 터지고 폰을 들어 올려 사진을 찍고 있는 어수선하지만 명랑한 분위기였다. 둘째 딸은 가슴에 얹힌 슬픔의 덩어리를 밀어내야 했다.

그래서 둘째 딸은 천천히 걸으며 농담을 했다.

"엄마 진짜 저승 가는 길 같아... 이렇게 환하게 빛나는 저승길이면 좋지 뭐... 우리 엄마 저승길 마중 하는 중이야... 엄마 잘 가... 우리는 이만 갈게..."

주위에서 화르르 웃었다.

"엄마 잘 가... 우리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돼..."

막내 동생이 거들고 나섰다. 또다시 화르르 웃음이 일었다. 그러나 웃음 끝은 힘없이 스러졌다. 진짜 좋아서 웃는 웃음일 리 없었다.

 

잠깐 서서 사진을 찍자는 첫째 딸의 말에 둘째 아들이 송자 씨의 어깨를 잡고 함께 돌아섰다. 송자 씨는 합죽이 웃고 있었다. 온통 빛이 너울대는 송자 씨 얼굴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언제 저렇게 보살처럼 편안하고 인자한 얼굴이 되었을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일 년에 서너 번 보는 송자 씨의 70대부터 80대 초까지의 얼굴과 몸짓에서는 노인 특유의 심술스러움과 고집이 드러났었는데... 둘째 딸은 좀 당혹스러웠다.

"엄마 브이 해 봐 브이..." 했더니 금방 손을 들어 올리며 입으로 브이... 하고 따라 하는 송자 씨.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둘째 아들은 송자 씨의 얼굴을 손으로 연신 쓸어내렸다. 환갑이 지나도 둘째 아들은 송자 씨를 볼 때마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하면서 딸내미 쓰다듬듯 쓰다듬고 애인에게 보내듯 다정한 눈빛으로 송자 씨를 바라본다. 자라면서 말썽을 부려 그토록이나 애간장을 태우던 아들이었는데.

"엄마 안녕... 잘 가... 아버지 만나면 우리 안부 전해 주고... 거기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막내딸이 또다시 농담을 했다. 주위에 흩어져 서 있던 가족들이 또다시 화르르 웃었다. 송자 씨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보살님처럼 평화롭게 웃으며 진짜로 작별인사 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에 호응하듯 가족들 사이에서 몇 명이 안녕... 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해맑고 천진한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던 송자 씨가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듯 바이바이 하고 흔들던 손을 어서 오라는 손짓으로 바꾸었다.

"싫어... 안돼... 우리는 못 가... 엄마만 가야 돼... 오빠... 오빠는 빨리 나와... 엄마한테 인사하고 나와 빨리..."

이번에는 둘째 딸이 오빠인 둘째 아들을 향해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가족들은 또다시 화르르 웃었고 이번에도 송자 씨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저 미소 지은 얼굴로 한 손을 들어 어서 오라는 손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길을 터 주라는 안내원에 의해 우리는 다시 빛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이 끝나거나 휘어지는 곳곳에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이 있었는데 듬직한 아들의 손을 잡고 있음에도 송자 씨를 보고 걱정부터 했다.

할머니 휠체어도 준비되어 있어요... 힘드실 텐데... 계단도 많아요... 이쪽에 앉아서 쉬고 계셔도 돼요... 이쪽은 계단 없는 편한 길이예요... 계단이 길고 가팔라요...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의뢰하지 않았는데 그렇게들 걱정을 해줬다. 가족들 또한 송자 씨가 걱정이 되었다. 특히 밑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 앞에서는 다른 길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송자 씨는 아주 잠깐 망설인 후에 괜찮다고 가 보자고 했다. 둘째 아들은 엄마의 뜻을 군말 없이 받아줬다. 까짓 내려가다가 힘들면 엎지 뭐... 여기 엎을 사람 많잖아... 엄마 내려가세... 힘들면 말하고...

송자 씨는 결의에 차서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둘째 아들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동굴 아쿠아리움, 황금폭포, 지하 호수, 황금나무 황금사슴, 와인 동굴, 컴퓨터그래픽이 만든 화려한 꽃길 등 볼거리가 많았지만 송자 씨가 특히 걸음을 오래 멈추고 있었던 곳은 거대한 용과 골룸 형상의 조형물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굴의 깊고 먼 곳에서부터 구불구불하게 기어 나온 용의 머리가 원숭이를 닮은 골룸의 뒤통수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송자 씨는 그 조형물 앞에서 무슨 대화라도 하는 듯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황금나무가 서 있고 '쉭쉭 호이호이 아이 셔' 하는 소원성취 주문이 있는 곳에서는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 같이 외칩시다 쉭쉭 호이호이 아이 샤... 소원아 이루어져랴... '열 명이 넘는 우리 가족의 같은 순간 같은 추문을 함께 외치며 함께 웃는 웃음소리가 동굴 속을 울렸다.

 

한 시간 가까운 동굴 구경을 무사히 끝내고 동굴을 나왔다. 송자 씨의 얼굴에서 힘들거나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들어갈 때보다 더 활기찬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송자 씨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동굴 속의 그 가파른 계단을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당신의 두 다리로 거뜬히 오르고 내렸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저마다 기쁨과 고마움과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주차장 가는 길의 넓은 공터에서 노랫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7080가요를 기타를 치면서 트롯 가락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치매 노인들을 위한 모금함이라 쓰인 모금함이 놓여 있었다. 단 한 명의 청중도 없었다. 그 모금함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은 송자 씨의 손이 벌써부터 자신의 분신인양 매달고 다니는 크로스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송자 씨는 그 어떤 모금함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속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을 해 줘도 소용없었다. 여전히 손을 꼭 잡고 걷던 둘째 아들이 거들었다.

"엄마, 모금함에 돈 넣고 싶어?"

송자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아들이 가방을 열어 돈을 꺼냈다. 만 원권과 천 원짜리 몇 장이 딸려 나왔다. 둘째 아들이 한 손에 만원 다른 한 손엔 천 원짜리 서너 장을 들고 송자 씨에게 물었다. 엄마 어느 쪽 넣을 거야?

송자 씨가 두 손을 번갈아 보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둘째 아들이 하하 웃으며 엄마 이쪽? 하고 만원 지폐를 들어 보였다. 송자 씨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 원짜리 지폐 서너 장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이거 넣을까? 송자 씨는 조금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를 부르던 거리의 가수가 노래를 멈추고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이고... 노인들을 위한 모금함에 노인분이 돈을 넣으시네요..."

둘째 아들에게 손을 잡힌 채 모금함을 지나 걸어가던 송자 씨가 몸을 돌려 다른 한 손을 내저으며 자랑하듯 장난스럽게 되받아 말했다.

"내가 아흔이씨더 아흔..."

거리의 가수가 놀라운 듯 몸을 뒤로 젖히는 시늉을 하며 다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이구나... 정정하시네요... 제가 기부하는 노인분들 중에도 아흔 까지는 안 계시는데... 팔십... 일고여덟 정도가 가장 많은 나이던데... "

마이크에 대고 하는 말이라 잘 들렸는지 송자 씨는 둘째 아들에게 한 손을 잡힌 채 뒤돌아 한번 더 큰소리로 씩씩하게 말했다.

"그래서... 돈을 더 넣을까요?"

하면서 손을 가방에 가져갔다.

"아이코 할머니 아니에요 그런 뜻이... 하하하... 참 유쾌한 할머니시네... 건강하세요..."

송자 씨가 가방을 여는 시늉을 하고 둘째 아들이 엄마 됐어 됐어... 하면서 말리는 시늉을 하고... 그 모습을 멀고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던 가족들도 너나없이 한 번씩 또 웃었다. 송자 씨도 즐거운 듯 함박 웃었다. 송자 씨는 유머도 아는 구순의 할머니였다.

 

송자 씨는 2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아 꾸준히 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 지금은 아주 좋아진 상태다. 송자 씨의 모친이 89세에 치매에 걸려서 2년 정도 앓다가 돌아가셨다. 송자 씨는 여전히 가끔 일기를 쓰고 통장관리도 직접 하고 자식들과 사위 며느리 손자들의 생일 때마다 농협에 가서 농협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10만 원을 보내주고 있다. 겨울만이라도 전원주택에 내려와 같이 살자는 첫째 아들과 며느리의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동네의 맨 끝 산 밑 오래된 집, 시어른들을 차례로 보내고 치매에 걸린 모친을 데려와 2년 수발하다가 보내고 남편을 보내고 다섯 남매를 키워 내보낸 집, 원룸처럼 개조한 집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가까이 살며 보살피는 큰아들 부부와 큰딸 부부의 말에 의하면 가끔 이상한 고집, 특히 옛 물건에 대한 고집을 부리는 것 외엔 전혀 치매노인 같지 않다고 했다. 당신이 치매 모친을 모셔 봐서 그 기막힘을 알기에, 당신 자식들에게는 그 기막힘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약물 복용을 철저히 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엄마 치매 걸리면 요양원에 보낼 거라는 둘째 아들의 으름장에 늘 겁먹은 얼굴로 어린애처럼 싫어 싫어 요양원 절대 안 가... 하시는... 그러니까 약 먹는 거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해야 돼... 하면 또다시 어린애처럼 고개 끄덕끄덕...

동굴 근처 서원국숫집에서 국수와 빈대떡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국숫집 주차장에서 헤어질 시간을 가졌다. 홍송자 씨는 어느새 둘째 아들이 아닌 큰아들의 옆에 자석처럼 붙어 서 있었다.

"우리 엄마 보게... 어느새 큰오빠한테 딱 붙어 있네 그랴... 우리 엄마 처세술 끝내 주는데..."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송자 씨는 첫째 사위가 운전하는 뒷좌석 첫째 오빠 옆에 세침 하게 꼭 붙어 앉아 있었다.

"엄마... 잘 가... 엄마 안녕... 엄마 큰오빠 말 큰언니 말 잘 들어... 고집부리지 말고... "

막내딸이 울먹울먹 말했다. 송자 씨는 세침 한 듯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못 들은 것으로 판단한 막내딸이 좀 더 큰 소리로 반복해서 말했고 이어 둘째 딸도 둘째 며느리도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작별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송자 씨가 소리를 꽥 질렀다.

"소리를 왜 쿠쿠 질럿싸... 누가 귀먹었나..."

그러자 큰 며느리가 말했다.

"저 봐요... 어머님 다 들으신다니까요... 꼭 일부러 못 들으시는 척하는 거 같아요... 아주 고단수시라니까요..."

 

둘째 딸 집들이에 올라오기 이틀 전 큰며느리는 친구 둘과 김장을 하는 자리에 송자 씨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도 송자 씨는 거의 말없이 김장만 버무렸다. 송자 씨는 귀가 어두워지면서 보청기를 끼라고 해도 절대로 끼지 않는다. 귀에다가 무얼 넣고 다니기 싫다는 이유였다. 송자 씨는 들고 다니거나 목에 걸고 다니는 거 보기 싫고 신경 쓰인다고 핸드폰조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 끝에 우리 어머님 늙는 거 아깝다고 큰며느리가 친구들에게 속닥이듯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서 송자 씨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큰며느리도 당연히 듣지 못한 줄 알고 잊어버렸다. 그렇게 속삭이듯 작게 한 말을 알아 들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네 친구들에게도 안동에 사는 큰딸에게도 자랑을 하더란다. 며느리가 내 늙는 거 아깝다 그러더라고...

어쩌면 송자 씨가 보청기를 끼지 않는 이유는 남은 여생 이제 듣고 싶은 좋은 말만 듣고 살겠다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 싶은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 이야기였다.

 

그날 저녁부터 가족밴드에 일박 이일동안의 사진과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모든 이벤트의 뒤풀이로 자리 잡은 사진과 동영상 감상과 품평회. 황금나무 아래 모여 앉아 쉭쉭 호이호이 아이샤 주문을 다 함께 외치며 찍은 사진은 모두가 활짝 웃고 있어서 최고 사진으로 평을 받았다. 사진을 의식한 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었다.

그리고 빛나는 주렴을 걷어내며 빛의 호위를 받으며 빛나는 길을 회심곡을 부르며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송자 씨의 뒷모습을 찍은 1  37분 동영상.

둘째 딸은 그 동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들었다. 이승에서의 삶과 작별하고 저승길을 가는 어느 노인의 뒷모습을 찍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거기다 그 노인이 부르는 회심곡이라니... 영상은 실제보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 둘째 딸은 이어폰을 끼고 회심곡도 집중해서 들었다. 눈물이 자꾸 났다. 가슴이 미어지게 슬퍼졌다. 빛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는 장면인데 왜 그렇게 슬픈지... 회심곡을 부르면서 걸어가고 있어서일까...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꼭 송자 씨는 그렇게 빛의 호위를 받으며 저승길을 갈 것 같았다.

그러다가 궁금해졌다. 길고 긴 회심곡 중 송자 씨가 부른 소절은 어떤 소절일까...

송자 씨가 부른 회심곡 중 동영상에 찍혀 알아들을 수 있는 소절은 '등을 밀고 재촉하니 혼비백산 나 죽겠네'였다. 그 앞의 두 소절은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에 제법 길게 부를 때는 동영상을 찍지 않았다. 동영상 속의 송자 씨는 혼비백산 나 죽겠네, 까지만 부르고 노래를 딱 멈추었다. 둘째 딸은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혼비백산'이라는 사자성어가 회심곡 전 7(인생의 길, 부모님 은혜, 몇 년이나 산다고, 죽음의 길, 저승사자, 풍도지옥, 극락왕생) 중 어느 부분인지 찾아보았다.

 

뉘분부라 거역하며 뉘 영이라 지체할까

실낱같은 이내목을 팔뚝 같은 쇠사슬로

결박하여야 끌어내니 혼비백산 나죽겠네

 

송자 씨는 길고 긴 회심곡 중에서 죽음의 사자가 찾아와 데리고 가려할 때의 소절을 그 빛으로 휘황한 동굴을 아들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흥얼거린 것이었다. 나이 구순에 이르면 죽음도 저승길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가 싶었는데... 혼비백산 나죽겠단다... 송자 씨는... 환하고 휘황한 저승길일지언정 혼비백산 나죽겠네...라고 했다.

 

무서웠을까 엄마는... 무서웠구나...

 

둘째 딸은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을 훔치며 그녀는 송자씨가 부르다 멈춘 다음 소절들을 읽어보았다.

 

사자님이 내 말 듣소 시장한데 점심 잡수

신발이나 고쳐 신고 노자돈 가져가세

만단개유 애걸한들 사자가 듣을쏘냐

애고 답답 설운지고 이를 어찌하잔 말고

불쌍하다 이내 일신 인간 하직 망극하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슬퍼마라

명년 삼월 봄이 되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인생 한번 돌아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

 

"엄마... 다리 아프지 않아? 다리 괜찮아? "

첫눈이 내려 쌓인 이른 아침 둘째 딸은 핸드폰에 대고 목청을 높였다.

"그래... 아침밥 먹었지..."

동문서답의 시작이었다. 둘째 딸은 목청을 더 높였다.

"다리 아프지 않냐고... 동굴 구경하느라 계단 많이 걸었잖아... 다리 괜찮냐고..."

"집 넓고 좋더라... 잘했다 잘했어... 애썼다... 강서방 잘 거돠(보살피고 지키라는 간수 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됨)"

"엄마 눈 오고 날씨 추워졌어. 어디 나가지 말고 방안에 있어... 넘어지면 클라는 거(큰일 나는 거) 알지?"

"오냐오냐... 나는 잘 있다... 나는 잘 있고 말고... 강서방 잘 거두고 잘 지내라 오냐오냐..."

... 하는 둘째 딸의 이어진 말은 탈칵! 하고 구형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에 무처럼 잘려지고 말았다.

둘째 딸은 이미 들을 수 없게 된 줄 알면서도 폰에 대고 불러 보았다.

 

엄마... 엄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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