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나를 양 옆에서 붙잡아 끌고 가다시피 도로를 건넜다. 어지럽고 웃음이 났다. 두 사람에게 끌려가서인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만 같았다. 공중을 걷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자꾸 웃음이 났다. 활주로의 비행기처럼 곧 날아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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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파워=황진교) 지난 일요일 입춘한파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날이었다. 절친의 딸 결혼식이 강남에서 있었다. 인천에서 시흥에서 왕십리에서 수원에서 지방에서 친구들이 열서너 명 정도가 왔다. 자주 만나는 친한 친구도 있고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 가물가물한 동창도 있었다.
오후 3시 30분 예식이었다. 신부아버지의 뭉클한 축사와 신부 친구의 다정한 축사와 신랑 친구의 감미로운 축가로 이어진 예식이 끝나고 뷔페로 지녁을 먹고 일곱 명 정도의 친구가 뒤풀이를 하러 술집으로 옮겨갔다.
친구들 중 내 집이 가장 가까웠고 그날의 혼주는 나의 절친이었다. 그래서인지 뒤풀이 자리에서부터는 추운 날씨에 멀리서 온 친구들을 즐겁게 잘 접대(?) 하고 싶은 호스트의 마음이 들었다. 새해부터는 절대, 그 어떤 자리에서도 다음날 후회로 머리를 쥐어뜯는 과음은 하지 않으리라던 결심이 무너진 것이 그 마음 때문이라고 하면, 몇 명쯤은 믿어주려나??
추운 겨울밤의 차가운 소주는 달짝지근해서 술술 잘도 넘어갔다. 술을 못 마시는 친구도 있었고 적당히 취한 친구도 많이 취한 친구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허물없이 편한 친구들이라 분위기는 짐점 더 유쾌해졌다. 술자리 후 필수코스가 되어버린 노래방에 가서 목청껏 노래 부르고 신나게 막춤을 추며 놀았다. 귀가는 시흥에 사는 술 못 마시는 친구가 운전해서 가는 길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래서 더욱 맘 놓고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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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 나올 것 같아서 도로 옆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시커먼 길바닥 위에 철재 배수구 덮개가 보였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취한 중에도 다음날 이곳을 지날 행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심이 작동한 행위였겠지. 그러나 속이 울렁거릴 뿐 토는 나오지 않았다. 답답하고 울렁거리기만 했다. 한번 게워 내면 시원할 것 같은데... 한 팔을 등으로 돌려 두드렸다. 토는 나올 듯 나올 듯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보았더니 속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제야 밤추위가 덮쳐왔다. 코트깃을 바싹 여미며 일어섰다. 주위가 빙그르르 돌았다. 회전목마를 탄 것 같았다. 한 발만 내디뎌도 그대로 넘어질 것 같아 다시 쪼그려 앉았다. 몸이 자꾸 흔들려서 눈을 감았다. 머리가 무거웠다. 얼굴은 바닥에 닿을 듯 한껏 웅크린 상태로 눈만 치뜨고 도로 너머를 건너다보았다. 도로 건너 한 블록만 지나면 내 집이었다.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과는 달리 다리가 풀렸다. 다리가 풀리면서 주위가 또 한 번 빙그르르 돌었다. 세로선이 촘촘한 철재 배수구 덮개가 나를 덮칠 듯 눈앞에 바싹 다가왔다.
에라 모르겠다.... 잠시만... 잠시만이야... 괜찮아...라고 마음이 속삭였다. 덮개 옆 시멘트 바닥에 앉은 자세 그대로 모로 몸을 뉘었다. 길바닥이 아니라 옆 사람에게 기대는 듯했다. 차가운 시멘트의 느낌도 싫지 않았다.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차갑지만 든든하고 다정한 사람에게 기댄 듯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땅 밑으로 푹 꺼지는 듯 아득해져서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다시 편안해졌다.
문득 과음한 다음날이면 늘 화장실에서 발견되어 '화장실'이란 별명을 갖게 된 친구가 생각났다. 토를 하려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과음하면 유독 얼굴이 붉어지며 열이 오르는 체질이므로 열이 오른 몸이 무의식적으로 화장실 타일의 시원함을 찾아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워있는 건 봐줄 만 한데 어떨 땐 변기를 부둥켜안고 있기도 했었댔지... 변기도 타일은 타일이니까... 술집에서도 나이트클럽에서도 없어져서 찾아보면 늘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다나... 그 친구의 행동이 이해되면서 실실 웃음이 났다. 이제 일어나야 하는데 집에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뱅뱅 맴을 돌았다. 몸을 일으키고 싶은데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누군가 나를 흔들었다.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낯선 여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새카맣고 여자의 얼굴만 동그랗게 떠 보였다. 여자가 나를 일으켜 앉혔다. 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 맨얼굴에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이의 생머리에 가까운 머리지만 중년의 여자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친구 딸 결혼식에 갔다가 술 조금 마셨네요... 괜찮아요... 집이 요 근처예요 괜찮아요...
과장되게 손사래를 치며 일어서려 했으나 휘청 하고 흔들렸다. 여자가 팔을 잡았다.
집 어디예요? 이렇게 추운데...
여자는 호들갑스럽지 않고 침착했다.
이 근처예요 괜찮아요 안 추워요...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데 발음이 흐릿하게 늘어졌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들리겠지... 부끄러운 마음이 웃음으로 흘러나왔다.
집 어디예요?
요 근처... 저기 도로 건너... 괜찮아요 괜찮아... 노우 프라블럼...
괜찮다고 문제없다고 하는데 몸이 자꾸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데 몸은 옆으로 갔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또 내 팔을 잡는 이가 있었다. 깁스한 팔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키가 껑충하게 크고 롱패딩을 입었다. 굽슬굽슬한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고 얼굴이 작았다. 앳되고 귀엽게 생긴 남자였다.
어? 학생인가? 학생 나 괜찮아요 고마워요... 팔 다쳤네...
데려다 줄게요 집 어디예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그냥 가셔도 돼요
나는 괜찮아 보이고 싶어 자꾸 웃었다. 아니 자꾸 웃음이 났다. 이게 뭐야 너... 뭐냐고... 쪽팔리게...
데려다 줄게요 집 어디예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두 팔을 내저으며 완강히 거부하자 두 시람은 양 옆에서 나를 꽉 붙들었다. 범인 연행해 가는 경찰들처럼 강제적인 힘이 느껴졌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집 어디예요 괜찮아요 라는 말이 오고 갔다. 그들은 어쩐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컨대 조금도 무례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막무가내로 다정한 아줌마 특유의 친밀감도 없었지만 어떠한 질책도 하지 않았고 호기심을 내비치며 묻지도 않았다. 결국 내가 포기하고 아파트 이름을 말해주었다.
어디로 가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어디로 가야... 하지? 큰길로 나가야 하는데...
내가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자 학생이 나를 붙잡은 팔을 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아 여기네... 이쪽으로...
학생이 핸드폰의 길안내 네비를 잠깐 들여다보고 확인한 후 또다시 깁스 한 반대편 팔로 나를 잡았다. 둘이서 나를 양 옆에서 붙잡아 끌고 가다시피 도로를 건넜다. 어지럽고 웃음이 났다. 두 사람에게 끌려가서인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만 같았다. 공중을 걷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자꾸 웃음이 났다. 활주로의 비행기처럼 곧 날아오를 것 같았다.
너어무 친절하시네요... 왜케 친절하세요? 요즘은 나쁜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정말 운이 좋나 봐요... 난 운이 좋아요... 항상... 운이 좋은 편이었지요... 정말 운이 좋았구나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지요... 정말... 오늘은 오랜만에... 너무 오랜만에 마셔서... 옛날에... 젊어서는... 근데... 정말 나 괜찮은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다니... 저는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닌데... 근데요... 두 분 무슨 사이예요?
아들이에요
여자의 대답은 무안하리만큼 짧았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은데 두 사람은 나만큼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졸지에 원하지 않는 업무를 떠 앉은 듯 묵묵했다.
아... 모자시구나... 모자... 나도 아들 있어요... 치음엔 연인사이인 줄 알았어요...
일말의 불안과 의심에서까지 놓여나자 농담까지 나왔다. 두 사람을 웃게 해주고 싶었나 보았다. 그러나 나만 킬킬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묵묵했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면서 나도 멈췄다. 낯익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아 다 왔네요 여기 맞아요... 감사해요...
그러나 그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또 데리고 갔다.
왜요? 왜요? 가셔도 돼요... 제대로 왔어요...
그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몇 층이에요?
여자가 물었다.
아이 괜찮은데 이렇게까지...
집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요...
그들은 나의 괜찮다는 말을 끝까지 무시했다. 결국 나는 층의 번호를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섰다. 그제야 그들은 나를 놓아주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돌아보며
감사합니다
꾸뻑 인사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려가지를 않았다. 버튼을 누르고 서 있었다. 나보고 들어가시라 했다. 먼저 들어가시라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돌아서서 번호키를 눌렀다. 문이 철컥 열렸다. 문을 잡고 진짜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거의 닫혀 그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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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나 집까지 안 데려다줬어? 술 취한 나를 버리고 간 거야? 그런 거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불에 타다 만 필름 같은 기억 속을 헤집다가 친구에게 전화했다.
너 토할 것 같다고 내려달라고 했잖아... 다 왔다고 금방 도착할 거라고 아무리 그래도 내려달라고 막 차문을 열라 그래서 내려줬지. 네비 보니까 니네집 근처기도 하고...
그랬다고? 내가?
그렇게 많이 취한 거 같지 않았는데 진짜 기억 안 나?
전화를 끊고 지난밤을 다시 곰곰 생각하다가 벌떡 일어나 방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함부로 벗어놓은 옷들이 어지러웠다. 결혼식장에 들고 갔던 숄더백이 보이지 않았다.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가 옷들을 헤집었다.
결혹식에 들고 갔던 숄더백은 내팽개쳐진 코트 안에 엎어져 있었다. 가방 안을 뒤졌다. 지갑도 그대로 있었다. 지갑을 열어 보았다. 5만 원 지폐 한 장과 만 원권 두 장 천 원권 3장도 그대로 들어 있고 운전 면허증도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핸드폰을 열어 카드도 확인해 보았다. 모든 게 그대로 있었다. 내 기억의 일부만 잃어버렸을 뿐이었다.
이렇게 타인의 순수한 친절을 나는 잠시 의심했다.
그날 이후 나는 모자를 더욱 깊숙이 눌러쓰고 다닌다. 그날 밤 나를 도와준 여자나 학생이 나를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날 밤의 그들을 떠올려 보면 만약에 나를 알아보더라도 다가와 알은 채 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했지만.
일주일이 지났는데 그 친절한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여기저기 그날밤의 에피소드를 무용담처럼 떠벌렸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이렇게 마무리한다.
야... 아직은 세상 살만하지 않냐?? 세상 험하고 무섭다 해도 그래도 아직은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거야.. 내가 그 산 증인이잖니... 그치?
ㅡ이 글은 술 취한 그날 밤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써 본 것입니다. 중간중간 끊어진 기억은 상상력을 동원했음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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