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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계치의 운전면허 도전기 1

머니앤파워 2024. 7. 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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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망설임 끝에 드디어 운전학원 문턱을 넘었다.

(머니파워=황진교) 이 글은 2021년 11월 8일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2022년 1월 12일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까지의 좌절과 실패와 성공과 그로 인한 눈물과 웃음의 도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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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화 

 2021년 11월 8일 월요일 

 비바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입동. 자연의 섭리 앞에 새삼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을의 낭만과 우수의 상징이었던 거리의 형형색색 낙엽도 하루아침에 집 쫓겨난 가장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알몸을 거의 드러낸 가로수들도 겨울 닥친 가난한 집 살림살이처럼 을씨년스럽다. 날씨 때문에 더욱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오후 2시 넘어 겨우 집을 나섰다. 택시 탈까 하다가 어차피 몇 번은 가야 할 길이고 환승 없이 가까워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운 전 면 허.

 매년 새해 다짐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일이었다. 매 해마다 이런저런 사정이야 있었지만 일순위 원인은 나의 심한 기계공포증이었다. 내가 모르는 온갖 크고 작은 부품들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기계의 내부를 떠올리면 어지럼증을 너머 멀미가 날 것 같다. 사람의 두뇌처럼  복잡한  기계가 사람 손끝의 작은 움직임으로 작동되는데 반대로 손끝의 작은 움직임으로도 고장이 나서 망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컴퓨터나 핸드폰을 사용할 때도 꼭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기능만 사용한다. 어설프게 알거나 모르는 기능은 배워서 써먹기보다는 바로 포기해 버린다. 나중에 내가 포기해버린 그 기능이 너무나 간단한 기능이어서 어처구니 없을 때도 많았다.

 하물며 자동차라니... 자동차는 복잡하고 크고 위험한 기계다. 자칫 나의 손끝에서 나 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오... 노노노... 

  가끔 쪽팔리고 (자가운전 친구들 약속장소에 운전해 와서 편안하고 폼나게 차에서 내리는데 나는 저 멀리서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숨을 헐떡이며 걸어올 때) 가끔 불편했지만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특히 나는 누구보다 건강하다.  가끔은 아프고 싶은 게 소원일 정도다.  그래서 가벼운 감기 증세나 두통이 오면 약을 사먹거나 쉬지 않고 좀 더, 좀 더 아프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 며칠 지나 그냥 나아버린다.  이런 나의 건강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운전을 못하는, 아니 하지 않는 거라고 오히려 큰소리도 쳤다. 건강한 장수의 아이콘이셨던  고(故) 송해 선생님이 자신의 건강비결을 S(버스) M(지하철) W(걷기)라 하신 말씀을 인용해 가면서.

  이런 나의 성향은 엄마를 닮은 것 같다. 통장관리 돈관리에 일기까지 쓰시는 자타공인 명민한 우리 엄마가  꼬부랑 할머니들도 들고 다니는 핸드폰이 없다.  우리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이나 핸드폰 사용에 도전했다가 포기했다. 늘 잃어버릴까 신경 쓰이고  목에 걸어 덜렁거리는 것도 싫다신다. 

 여담이지만 우리 엄마는 에어컨 들이는 것도 집에 저승사자 들이는 것만큼이나 싫어하셔서 지금도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신다. 팔십 평생 에어컨 없이도 잘 살아왔고 덥다 싶으면 금방 찬바람 나는데 그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고집을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 엄마보다 방문하는 우리가 필요해서 그렇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더워서 오기 싫으면 여름 지나고 찬바람 불 때 오면 되지 않겠냐고 하셔서 더 이상 할 말을 없게 만드셨다. 

 올해 여름엔 언니와 형부와 오빠가 엄마 몰래 표 안나는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해 주려고 비밀작전까지 펼쳤다. 설치기사가 오기 전에 엄마를 밖으로 유인해서 설치가 끝날 때까지 잡아 둘 작전이었는데 예정시간보다 설치기사님이 일찍 엄마 혼자 있는 집에 도착하셨다. 

"누구이껴?"

"아 할머니 에어컨 설치하러 왔습니다. 자제분들이 말씀 안 드렸나요?"

"에어콘을요? 됐니더... 고마 가소... 에어콘이고 에어컨이고 난 필요 없으니까 고마 갖고 가소..."

아마도 그런 실랑이를 벌였을 것이고 뒤늦게 달려온 언니도 오빠도 형부도 그런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엄마집에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고 화내고 협박해도 소용없더란다. 

 


 

  천장에 달린  (상담. 입학)이라 쓰인 팻말 아래 직원 한 명 당  고객 두 명이 창구에 앉아 있었다. 직원은 열심히 설명하고 고객은 머리를 맞대고 귀를 모아 듣고 있었다. 대기자들도 여러 명 앉아 있었다. 모두 젊었다. 나는 고층 빌딩 사이 오두막집처럼 기가 죽고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어졌다.

  "어떻게 오셨어요? "

  가만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서서 두리번 거리다가 상담 중에  잠깐 고개를 든 여직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여직원의 시선에도 내가 다른 고객들과 조금은 달라 보였는지 친절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어 왔다.

  "어... 상담... 좀.... 하려고....."

  내 목소리는 작게 기어들어갔다. 얼굴에 억지로 띄운 미소는 좀 긴장되고 어색했으리라...

  "여기 성함 쓰시고 기다리세요..."

  그러고도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20대 젊은 여자애와 같이 상담창구에 앉았다. 직원이 프린트물을 주고 프린트물에 형광펜을 그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수강료 계산과 금액이 거의 전부인 설명이었다.

    "학과교육을 먼저 받아야 되는데요  시간당 11000 원이고 세 시간 33000원이고요... 장내기능은 네 시간씩 이틀 받아야 되고요 시간당...."

 30대로 보이는 얼굴이 작은 여자직원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말이 빨랐다.

   "잠깐만요..."

  나이 든 티 안 내려고,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내가 태클을 걸었다. 어떻게 시작하는 건데... 돈도 많이 드는 것 같은데.... 그냥 설렁설렁 대충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좀 천천히 설명해 주세요...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그러니까 학과교육은 필기시험을 위한 거고 장내기능? 이거는 실기시험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거죠?? "

 


 

  등록하고,  교육과 시험일정 잡고, 시험문제집 받아 들고 학원을 나왔다.  상담하러 온 대기자들이 더 많아졌다. 모두 젊었다. 나는 뭐 했나... 너무 대충 살았어..

 

  지끈지끈  머리가 아팠다. 20분 정도 기다리면 셔틀버스 간다는데 나는 굳이  또 걸었다. 올 때 내린 그 버스정류장을 향해서 춥고 비바람 부는 어둑어둑한 낯선 동네를 우산 쓰고 젖은 낙엽 밟아가며  차량 맞게 걸었다.

  나는 불편에 길들여진 모양이라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불행에 빠진 사람이 불행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불행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이든 삶이든 길들여져서 익숙해진 것에서 벗어나기란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꼭 벗어나야 하나? 지금에 와서? 귀찮아... 번거로워... 그냥 살던 데로 살래....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겠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러나 이미 나는 출발선을 떠났다. 쭈삣거리다가 꼴찌로 출발했을지언정 출발한 것은 확실하다. 뒤돌아보지 말고 천천히라도 앞으로 나아가자... 화이팅!!

  

 

  집 앞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레몬차를 마시며 시험 문제집을 들여다봤다. 학원 스케줄과 나의 사정 때문에 일주일 후 학과교육이고  이 주 후가 필기시험이다.

  귀가하던 아들이 들렸다. 인상을 잔뜩 쓰고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어이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필기시험은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될걸... 기본이야 기본... 문제만 잘 읽으면 돼..."

    "그래도 시험이거든... 기본인데 떨어지면 더 쪽팔리잖아. 아빠 말 못 들었니? 문제 하나 안 풀어보고 전날에도 술만 진땅 마시고 이튿날 필기시험 봤다가 떨어진 거... "

  나는 문제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근데 엄마... 난 엄마가 면허증을 따도  실제 운전은 못할 것 같아.., 난 엄마가 운전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돼 "

  말 끝에 아들이 크크크 하고 웃었다. 아들의 그 말은 귀가 아니라 가슴에 와서 박혔다. 내가 가장 염려하는 바를 정확히 말해줬던 것이다. 나는 애써 큰 소리로 대답했다.

  " 아니야... 의외로 잘할 수도 있지... 두고 봐라... 뭐..."

  큰소리는 쳤지만 뒤끝이 나도 모르게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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